제11장: 리더십의 기어, 변속의 기술
연차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온 민후를 맞이한 건, 평온한 아침이 아닌 전쟁터 같은 사무실이었다. 갑작스러운 클라이언트의 변심으로 주력 프로젝트의 마케팅 시안을 반나절 만에 전면 수정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 터진 것이다.
예인 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팀장님, 이걸 지금 어떻게 다 바꿔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빠른 실패'랑 '심리적 안전감'은요? 질문을 던져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민후는 순간 갈등했다. 평소처럼 질문을 던지고 예인 씨가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하지만 시계는 야속하게도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옆 팀 마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불났는데 뭘 멀뚱히 서 있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내 머리가 정답이라고 했지?”.
마 팀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함을 지르며 팀원들을 닦달하고 있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 마 팀장의 팀원들은 욕을 먹으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민후는 깨달았다. 리더십은 단 하나의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전환해야 하는 ‘변속의 기술’이라는 것을 말이다.
책상 밑에서 미로가 앞발로 민후의 구두를 툭 쳤다. “강 팀장, 지금 자동차 기어를 N(중립)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불이 났다면 어디로 뛸지 토론하는 게 아니라, 출구로 뛰라고 명확하게 지시해야지!”. 민후는 즉시 기어를 ‘지시형 모드’로 바꿨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예인 씨,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제가 명확한 가이드를 줄게요.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제 지시를 따라주세요. A 시안은 삭제하고, B 시안의 레이아웃만 가져와서 1시간 안에 1차 본을 만듭니다. 나머지 데이터 백업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평소의 부드러운 민후와는 딴판인 모습에 예인 씨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리더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안정을 찾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민후는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실무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최종안이 클라이언트에게 전달된 오후 5시. 민후는 다시 기어를 ‘코칭형 모드’로 부드럽게 변속했다. 그는 예인 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예인 씨,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까 제가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놀랐죠? 비상시엔 리더가 방향을 빨리 잡아야 팀원들이 덜 고생하거든요. 자, 이제 숨을 좀 돌리고 얘기해 볼까요?
이번 긴급 상황을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인가요?
그리고 우리가 다음엔 무엇을 더 준비해 두면 좋을까요?”.
민후의 질문에 예인 씨는 스스로 부족했던 점과 대처 과정을 차분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민후는 다시 ‘들어주는 리더’로 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후, 거실에서 기지개를 켜는 미로에게 민후가 말했다.
“거봐, 강 팀장. 리더십 기어를 바꾸니까 예인 씨 표정도 훨씬 안정적이지? 상황에 따라 D(주행)에서 R(후진)로, 때로는 강력한 L(저단 기어)로 변속할 줄 알아야 진짜 베테랑 운전사야”.
“미로야, 사실 지시하는 게 나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어. 혹시 꼰대처럼 보일까 봐 겁났거든”.
“리더십은 연기가 아니라 대응이야. 무조건 잘해주는 게 좋은 리더가 아니라, 상황에 가장 필요한 ‘모드’를 꺼내 쓸 줄 아는 리더가 진짜 실력자야. 마 팀장은 기어가 지시(L) 하나밖에 없어서 고장 난 거고, 팀장님은 이제 4단 모드 기어를 다 가진 거지”.
미로는 민후의 발등에 턱을 괴며 덧붙였다.
“근데 강팀장, 리더가 기어만 잘 바꾼다고 다가 아니야. 우리 조직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한지, 즉 ‘DIET’가 잘 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거든. 내일은 우리 팀의 건강 상태를 한번 체크해 볼까?”.
민후는 수첩에 적었다. ‘리더십은 단일 품목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맞춤형 처방이다. 때로는 단호한 지시가 가장 큰 배려가 된다.’.
� 미로의 한마디: "고속도로에서 후진 기어를 넣으면 안 되듯, 상황에 맞는 리더십 모드가 있어. 불이 났을 땐 지시하고, 불이 꺼졌을 땐 코칭해. 기어 레버를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절해 봐, 강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