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by 주댕맘


아이가 쓴 글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간 거기 있었을 텐데, 앞 쪽이 아닌 뒷 쪽에 써둔 터라 있는 줄도 몰랐다. 글로 썼으니까 그때 내게 그렇게 재잘 댔구나 싶은 주제들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과 히틀러. 이 심오하고도 어려운 주제가 왜 아이에게 재밌었던 건지 글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프랑스 시민 혁명문과 히틀러 부하 반성문. 모두 이들의 관점을 상상을 가미해 쓴 글이었다.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는 설명문과 논설문이 아닌, 저항 정신과 윤리 감각이 살아있는 상상 글의 힘이란.


너무 웃겨 혼났다. 여러분, 무기를 들고 모이십시오, 란 첫 문장에 빵 터졌고, 그때 나는 17살이었다, 란 히틀러 부하의 읊조림에 무릎을 탁 쳤다. 이 센스, 센스, 센스!!


역시 내 아들이 맞았다. 군데군데 오타나, 구어체, 혹은 아쉬운 문장들이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이 글의 흐름을 이어가는 호흡, 역시 스토리텔러 답게 잘 전개해 나갔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데 앞으로 얼마나 다듬어갈 수 있겠는가.


그간 미국에서 살다 온 4년의 시간이 아이의 한국어 발달 시간을 잠식해 버린 건 아닌가, 그래서 아이가 글에서도, 다른 과목에서도 공부가 더딘 게 아닌가 늘 조마조마했다. 아이의 글을 보는 순간, 이제 발달하고 있구나 안심이었고,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적 기질이 있다는 게 기뻤다.


꼬물꼬물 이상한 글씨체로 빽빽하게 써 내려간 아이 글을 보니, 집중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써내려 갔을 아이 모습을 상상하니 짠하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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