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꺼이꺼이 운다.
생각지 못하게 오래 걸린 팀숙제를 마무리 한 뒤, 단어를 외워야 하는데, 잘 시간이다. 내일 학교 일정으로 단어를 외울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인식하게 된 게 트리거가 됐다. 팀숙제 중 친구가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지속하고 그걸 엄마인 내가 짚어내자, 더 마음이 무너졌다.
소리 높여 우는 아이를 안는다. 단어를 쪼개서 외울 방법들을 이리저리 묻는다. 그럼에도 아이의 불안이 그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같이 그 불안이 증폭돼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이제 없다. 그냥 지긋이 아이를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것을 믿고.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기 때 아이가 떠오른다. 뭔가 불편하면 말을 정확히 못 하니 소리 내어 우는 아이를. 인간이 우는 이유는, 성인이 되어도 우는 이유는, 그 불편함이 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을 때 우는 것 같다.
5분 정도 흐르니 소리가 잦아졌다. 실컷 울고 나니 후련한가 보다. 오늘은 10개, 내일 오전 10개, 다녀와서 10개를 외우자고 합의하고, 그리고 다 맞을 필요 없고 그중에 5개는 쳐내자고 하자, 누그러졌다. 붉은 얼굴에 눈물범벅이던 녀석이 이제는 뽀얀 얼굴로 돌아왔다.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내 마음 받아줘서 고마워.
엄마인 나는 그냥 녀석의 토로를 받아주면 되는 거였다. 그냥 큰 호수가 된 것 마냥 쏟아내게 말이다. 얼마나 많은 좌절들이 앞으로도 있겠는가. 결국 그 좌절을 수습하는 건 아이 자신일 테니, 나는 너른 호수와 같은 품으로 그냥 안아주면 된다, 단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