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제각기 든 포스트잇을 금세 작성해 칠판에 부착했는데, 내 아이만 여전히 답을 못찾고 헤매고 있다. 아주 쉬운 문제였기에 선생님도 내셨을 터인데,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다행히 모둠 아이들이 눈치 채고 아이를 도와준다. 후다닥 괄호를 써서 답을 완성한 아이가 쭈뼛쭈뼛 일어난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칠판을 향해 걸어간다. 바닥에 눈을 붙인 채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고작 수업 시작 오분 만의 일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은 타 들어간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저 순간 민망함을 느낄 아이 마음을 짐작하느라. 곁에 가서 답을 알려주고 싶다. 수업 오분 만에 주눅이 든 아이는, 이후 활동 문제가 쉬웠음에도 자신의 답을 믿질 못했다. 발표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되는 40분이, 혹여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 자신을 수많은 엄마들 앞에서 당황시키지 않을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종이 울리자, 뒤돌아 엄마를 찾는 얼굴이 보인다. 이미 피곤한 얼굴. 고생했다며 다독인다. 잘했다고 안아준다. 내 씁쓸함은 삼키고, 아이의 속상함을 먼저 읽는다. 못해도 뻔뻔하면 좋으련만.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 때 얼어버리는 아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 만큼이 되지 않을 때 조우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무슨 느낌인지 알기에, 슬픈 마음이 체하듯 목 아래쪽까지 한번에 차오른다. 누구보다 빠른 문화 속에서 혼자 고고히 그 정도까진 미리 공부 시키지 않아도 된다며 내 교육 소신을 지키려다, 아이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늦은 후회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