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은 괴로워

쓰임 받지 못한 능력이 가끔 나에게 고통을 선사할 때

by 스템텔라

오늘도 익숙한 소리에 어렴풋이 잠을 깬 듯하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더듬거리다 폰을 집어 드니 새벽 네 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배경 삼아 '엘리제를 위하여'로 추정되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이는 아마도 쓰레기를 수거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타고 계신 큰 차량일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인데, 수거 중에 차량을 천천히 옮길 때 나는 "띠~띠~"배경음에 대해 나도 모르게 집중이 되고 신경이 곤두서게 되어버린다. '저 소리는 Bb비플렛이네'라고 혼자 의식을 하다가 혼자 머릿속에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망상까지 가다 보면 잠을 깨버릴까 봐 접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노력을 한다. 나는, 지금 작곡가도 아니고 더군다나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명탐정 코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불협화음』에피소드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 왈
"너는 절대음감이야, 당장 음악공부를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시간에 악기를 선택해서 실기시험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 나는 쉽게 가겠다는 생각에 고민 없이 피아노를 선택했고 연주를 했다. 통상,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악기 하나쯤 배우는 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사례가 많은데 나도 경험은 있었다. 덧붙여서 조금 특이한 이야기를 하자면 음악교사이자 피아니스트셨던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나에게 피아노를 지도해주셨었다. 해 질 녘에 붉은 노을빛을 머금은 가녀린 손등이 보이면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시는 그의 카리스마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외할아버지를 이어서 집안에 아무도 음악가가 없었던 탓인지 집안에서는 나를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다. 5살 때부터 배운 피아노로 초등학교 때까지 콩쿠르도 꾸준히 참가하고 성과도 좋았지만 중학교 입학 직전, 당시 나를 4년 동안 붙잡고 가르치던 피아노 스승이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피아노를 정말 잘 치셨는데 못 보게 된 것은 참 아쉽다. 그래도 범법행위는 나쁜 것...)


그 후에 음악에 대해 잠시 잊고 살다가 고등학교 때 실기시험이 끝난 후에 음악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유난히 까칠한 성품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부담스러운 마음을 가졌으나 상담을 하겠다고 해서 따라갔고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을 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가 그만둔 경험과 모든 세상의 소리가 음계로 들려서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했더니 갑자기 음악실로 데려가서 나를 테스트했다. 양손으로 화음을 쳐서 어떤음인지 맞추고 본인의 성악에 맞춰서 즉흥 반주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결과가 만족스러웠는지 당장 음악을 전공하라고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절대음감'이구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기연습만 열심히 하고 실력이 좋다면 실기 100퍼센트 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거뜬히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만 듣고서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실용음악과 진학을 위해 예체능으로 계열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나에게 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재능만 믿고 잘될 것이라고 착각하며 시간만 보내다가
거만함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다

뜬금없지만 가수 3명을 학교 선배랍시고 살짝 엮는다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가수 GOD의 김태우 선배님은 우리중학교의 전교회장이셨는데 공부도 잘하시면서 끼도 많으셨. 마침 그 시기에 장우혁 선배님이 HOT라는 그룹으로 큰 성공을 했다고하여 심지어 그가 다닌 고등학교의 레벨이 올라갔다는 소문이 있어서 궁금한 나머지 그 학교에 진학을 해서 소소한 소속감(?)을 쟁취했다. 어느 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음악의 전설로 불린다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가 회장직이 되어 운영하는 밴드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오디션을 보고 가입을 했다. 당시 오디션 분위기는 '슈퍼스타 K'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조성하고 혹평이 난무한 나머지 지원하는자들의 자존감을 많이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나 또한 '괜히 지원했다'싶었는데 표정이 좀 안돼 보이셨는지 마지막 인원으로 합격을 시켜 주셨다.(분명 노래를 시켰는데 키보드 연주자로 합격한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결국, 후배들을 강하게 잡는 분위기가 싫어서 일찍 탈퇴했지만 정말 배울것이 많은 조직이었는데... 좀 더 붙어있을걸, 지금생각하면 아쉽고 후회가 된다(그때 회장님은 지금 가수 십 센티의 권정렬 선배님... 티브이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세 선배님의 공통점은 '재능을 기반으로 한 피나는 노력'이었다. 노력이 99퍼센트 이상이 되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당시의 나는 너무 안일했고, 지나치게 낙천적이었다. 실용음악(작곡)으로 진로를 결정한 후에 음악 선생님한테 소개받은 대학교 교수(당시 시간강사)에게 레슨을 받게 되었고, 이를 빌미로 나는 오전 수업만 하고 레슨을 받는다고 오후에는 학교 수업에 참석 안 하는 일이 많아졌다. 교수님은 학교에 올 때마다 생계로 하고 있던 일 도중에 냉동탑차를 끌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부랴부랴 뛰어왔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나는 말로는 괜찮다 했지만 태도로써 이미 교수님을 점점 무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이 '절대음감'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위축된 모습을 내게 보인 이후의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실용음악과에 정교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포트폴리오가 중요했고 음계가 정확하게 들리지 않던 그는 나에게 본인의 커리어 준비에 필요한 악보를 그리라고 시켰다. 나는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청음과 화성학이 필요했는데 이론에 대한 학문인 화성학은 배우는 것이 맞으나 음을 듣고 악보를 따는 청음은 교수님이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이 음을 나에게 묻는 상황이 많아지고 급기야 내가 알려주는 상황이 되면서 신뢰가 옅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레슨 때마다 내 눈이 썩은 동태눈같이 변해갔다. 4계절을 만나봐야 된다는 것은 이때 쓰는 말이 아닐 텐데, 우리가 오래 봤다고 교수는 레슨비 인상을 요구했고, 엄마는 자격 없어 보이는 교수와 열정 없는 나의 콜라보에 폭발한 나머지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레슨을 그만두게 하셨다. 당시 전전긍긍하던 교수님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만두는 것이 순간 죄송하기도 했지만 후에 정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력은 재능을 이기는구나, 다행이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처지를 알고 나서는 교수님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음악을 그만두고 얻은 타이틀은 '모의고사 전교 꼴찌'와 '내신 뒤에서 전교 3등'으로 음악 유망주에서 운동부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었다. 오죽하면 친하지도 않던 씨름부 친구가 소문을 듣고 왔다며 "나 문제도 안 보고 찍었는데 너 문제는 읽은 것 아니냐"며 깔깔대며 놀렸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음악을 그만두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반 포기상태로 수능을 준비했다.(고등학교 교과과정 기초의 반 이상이 날아간 상태였지만.. 남은 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호랑이에게 아무리 진귀한 풀을 주고 돼지에게 값진 진주를 준다고 한들 쓰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것을,

나 또한 안일함과 열정 없는 불성실함에 재능을 활용하지 못했지만, 아쉬움보다도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면 인생에서 더 소중한 가치로 을 수도 있을 듯하다.

언젠가는 그저 쓸모없다고 여던 절대음감을 스트레스와 피로가 아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능력으로 발휘하는 날이 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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