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아무렇지 않던 일상 속에서 죄의 다른 모습 찾기

by 오소정

14년전, 나는 재학중인 중학교의 도서실에서 점심시간마다 봉사활동을 했다. 학생들의 도서 대출, 반납, 서고 정리 등을 했는데 그때 대출해서 집에 가져온 후로 14년간 반납하지 않은 책이 있었다. 내가 반납 담당이라 내 멋대로 반납처리를 했으니 아마 도서실에서는 책의 행방을 몰랐을 것이다. 그 책이 좋아서 탐이 났는지, 다 못 읽어서였는지 그대로 내 책장에 꽂혀서 몇 번의 이사를 하고 신혼집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 주일 설교 시간에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죄를 죄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편해서’, 혹은 ‘다 이렇게 하니까’라며 가볍게 넘겼던, 습관처럼 짓는 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성가대석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얼굴이 빨개졌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내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는 바로 그 책,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이었다.


이게 죄라고 생각하니 그 책의 존재와 그 당시 반납처리를 하던 나의 손이 부끄러워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책을 학교에 돌려줘야 하는데, 방법이 요원했다. 아니,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책 납품하는 제부에게 부탁해 책 14권을 주문했다. 이미 낡아버린 1권을 새 책으로 대신하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제일 신간까지, 그리고 몽골에서 만나 뵀던 이용규 교수님의 ‘내려놓음’ 시리즈를 합해 총 연체 기간 14년을 해마다 한 권씩으로 나름의 계산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새 책 열네 권과 낡은 책 1권에 더해 손 편지를 썼다. 솔직하게. 내가 가짜로 반납 처리를 하고 계속 가지고 있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설교를 듣던 중에 이렇게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책과 내 거짓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이렇게라도 늦게 반납해드리니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책이 배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몇 시간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성함도 얼굴도 정확히 기억이 나는 윤리 선생님이셨다. 책을 잘 받았다고. 이것도 기증이니 도서실에 기증 도서 코너를 만들어야 한다며 나의 졸업 연도를 물어보셨다. 너무 늦게 반납해 죄송하다고 다시 한번 전화로 사과드렸다.


죄가 이렇게 소름 끼치고 부끄러운 것인가를 깨닫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일은 내가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똑같은 습관적인 죄 중 한 가지에 불과하겠지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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