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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정 Feb 27. 2024

목사님의 베르사체 넥타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내 눈엔 특별한 렌즈가 있지

 

  어느 주일 오후, 교회에서 QT모임을 위해 탁자에 빙 둘러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사님, 넥타이 베르사체네요.” 목사님의 넥타이를 보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어떤 분이 좋은 거라며 선물을 주셨다고 하시며 “이게 명품이야? 좋은 건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속으로 ‘누가 봐도 저기 딱 메두사가 있는데 어떻게 저게 베르사체 넥타이인지 모르시지?’라고 생각했다.     


  호주에서 교회 청년들과 골드코스트의 베르사체 호텔에 가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주차장부터 반짝반짝한 그 5성급 호텔의 고오급 커피 –나는 유학생이라 주로 얻어먹는 입장이어서 가격은 기억 안나지만-를 마시면서 ‘와, 커피 한 잔이 이렇게나 비싸다고? 호텔 커피는 다르구만’이라며 감탄했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자일거리에서 교회 언니와 아이쇼핑하다 만난 한 예쁘지만 비싸고 정작 한국에선 입고 갈 곳이 없는 베르사체 베이비핑크 칵테일드레스를 잊지 못하고 있었기에 더욱 목사님의 그 날 모습 속에 오롯이 그 메두사 머리만 동동 떠다니며 내 눈에 콕 박혔는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내 남편이 환경미화원이라 길가에 내놓은 불법 쓰레기만 보인다던가, 내가 임신을 하고 나니 뉴스 속엔 온통 아동학대나 유기 같은 세상천지 못된 놈들만 있다던가, 내가 뷰티풀 코란도를 사고 나서 도로 위에 쌍용 차만 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일일 것이다.      


  한동안 목사님의 베르사체 넥타이는 내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생각나게 했었다. 내가 ‘아, 너는 베르사체 넥타이구나’하고 불러주기 전에는 목사님의 옷장에 그저 단 하나의 넥타이에 지나지 않았던 너. 아마 그날 이후로 목사님은 그 넥타이를 매실 때마다 한번 더 생각 하실 지도 모른다.      


  수년이 지난 후, 그날의 일을 통해 나는 단순히 내가 명품브랜드를 하나 알고 있다라기보다는 내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 내 시각자체를 통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 나는 어떤 가방 하나가 너무 사고 싶은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혹시 이거보다 더 예쁘고 좋은게 있을까봐 선뜻 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 학예회를 가서도 온통 엄마들이 메고 온 가방만 보이고 병원에가서도 보호자들이 들고다니는 가방만 보이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보이면 사라는 거겠지?     


  아, 내 머릿속에 온통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는 생각이 가득하면 좋겠다. 그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가득할테니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로마서 8:5(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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