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그리움

- 어릴 적 나의 동네

by 김영현

쭉 뻗은 좁은 골목길에는 열 가구가 조금 넘는 집들이 서로 대문을 마주하여 늘어서 있다. 행정구역상 서울이라고 하지만 달동네의 대표 이름 ‘봉천동’의 청룡마을이라는 작은 동네이다. 받들 봉[奉], 하늘 천[天]. 하늘을 받들고 있다는 경건하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달동네를 이름에 이미 포함하고 있다고들 한다. 관악산의 정기를 받고 나는 여기에서 태어났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왼편의 집들은 모두 축대를 쌓아 올려 7~8 계단을 올라야 대문과 마주할 수 있다. 축대 위로 대부분의 집들에 장미 덩쿨이 심어져 있다. 여름이 되면 축대 위 담장을 타고 빨간빛, 분홍빛의 장미들이 마을을 화사하게 만든다. 골목 입구의 두 번째인 우리 집에는 빨간 장미가 심어져 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옆집의 분홍 장미가 예뻐 보였는지 매년 장미가 필 때마다 엄마에게 우리 집에도 분홍 장미로 바꾸자고 졸랐다. 지금 생각하면 바뀔 수 없음에도 엄마를 귀찮게 했다.

계단을 올라서 대문을 열면 담장과 장미로 가려졌던 집이 보인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2~3 계단 높이의 단을 올라서 마루로 들어설 수 있다. 단으로 올라가기 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펌프다. 펌프는 집집마다 설치되어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폐쇄되었다.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늘어진 S자 모양의 긴 쇠막대기를 위아래로 저으면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펌프질 한 번 해보고 싶어 엄마를 조르지만 “넌 아직 키가 작아서 할 수가 없어. 조금 더 크면.. ” 하지만 나는 키가 크기 전 그 집에서 이사를 가 버려 아직까지 펌프질을 해보지 못했다. 단의 저편 끝에는 쇠로 만들어진 작은 그네가 하나 놓여 있다. 언니 오빠에게는 작아진 그네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도 엄마에게 혼나 속상할 때도 나의 아지트처럼 그네는 온전 나의 것이었다. 왜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펑펑 울고나서 오빠와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그 사진은 컬러다. 사진의 뒤편에 그네가 보인다. 그 사진을 보면 내 얼굴보다 내 뒤의 그네가 먼저 눈에 띈다. 펌프와 그네가 있던 그 집이 그립다.

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오면 양옆으로 긴 골목이 보인다. 그 골목에는 9~10채 정도의 집이 있다. 오래 살아서일까 예전에는 모두 그랬던 걸까? 골목에 있는 이웃들 간의 정이 많이 끈끈했다. 모두가 아는 집이고 어느 집에 들어가 놀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골목에는 내 친구가 두 명 있었다. Y와 M. 동갑이어서인지 같이 모여서 노는 날이 많았다. Y는 아버지 고향 친구의 딸이어서 많이 친했다. 소리지르며 뛰기 좋아했던 나와는 다르게 Y는 조용하고 웃는 모습이 예쁜 친구였다. M은 지금 생각하니 승부욕도 있고 리더십이 있었던 거 같다. 항상 우리 세 명이 모이면 대장을 하고 싶어했다. “우리 나라에는 조씨가 제일 많아. 조M, 조Y. 근데 너만 김영희이잖아”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지만 그때 나도 지는 것 같아서 싫었나보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가끔씩 생각이 나고 그 친구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M네 집은 축대가 없는 쪽 집에 살고 대문과 마당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Y네 집보다 M네 집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자주 대문 기둥에 독수리인지 매인지 모를 큰 새가 앉아 있었다. 때로는 그 골목으로 말이 뛰어다닐 때도 있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미친 말이라고 어른들을 말씀 하셨다. 새나 말이 출몰할 때면 우리는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나름 서울이었지만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새벽이 되면 삵이나 족제비가 등장해서 사람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머릿속에 떠올리니 자연친화적인 동네였고 그리운 마음이 크다.

우리 집 대각선 쪽에는 누구의 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옥수수 밭이 있었다. 나보다 키가 큰 옥수수 덕분에 숨바꼭질을 할 때 최적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옥수수 밭에는 조심해야 할 비밀이 하나 있다. 밭끝에 가면 안전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낭떠러지... 아래 마을의 축사였다. 나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돼지로 기억된다. 나보다 10살 넘게 많았던 옆집 오빠(그 때 당시 중학생 이었던 것 같다)는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나를 보고 자주 겁을 주었다. “너, 말 안 들으면 옥수수 밭 넘어 돼지 우리로 던져 버릴 꺼다” 그때는 오빠의 말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 말도 그리워진다.


골목에서 때로는 누구네 집에서 놀고 있다가 밥때가 되면 “영수야, 영희아, 밥 먹자”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하고 집으로 향해 뛴다. 그리움을 넘어 가슴이 먹먹하다.

아.... 그리운 게 동네가 아니라 엄마였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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