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그리움2

- 어릴 적 기

by 김영현


1.

“아가씨, 제가 목도리 떴는데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글쎄요.... 뭐지?”

“아가씨가 예전에 떠 줬던 워머 풀어서 그 실로 목도리 떴어요”

“그냥 버리고 새 실 사서 하지 그랬어요. 실 풀어서 다시 뜨면 뻣뻣한데... 그래도 예쁘게 잘 떴네요”

실을 풀어서 다시 뜨면 뻣뻣해진다는 걸 그녀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알았다.

2.

흑백 사진 속, 사람의 옷도 인형의 옷도 모두 뜨개옷이다. 그때는 그랬다.

친구 나미네 집에서 지윤이와 함께 소꿉놀이를 했다. M네는 축대를 쌓아서 만든 집이 아니어서 마당에 흙도 많고 정원이 예쁘다.

“얘들아, 밥 먹어라”

라는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정수 오빠네서 오빠가, 나미네 집에서 그녀가

“네”라는 대답과 함께 집을 향해 달린다.

오늘 저녁밥은 꽁치조림에 달걀 비빔밥이다. 엄마는 달걀을 톡 깨서 노른자만 건져서 그녀의 밥에 얹는다. 그리고 간장을 넣어 밥을 비빈다.

“막내는 밥이 적으니까 흰자까지 넣으면 너무 묽어져서...”

라며 남은 흰자는 엄마 밥에 넣고 비빈다. 엄마 밥에는 노른자가 없다. 엄마와 그녀의 밥은 둘 다 같은 간장 비빔밥이지만 같지 않다. 색도, 고소함도... 다섯 살도 안 된 어린 마음이지만 엄마의 계란 비빔밥 색이 50이 넘은 그녀의 눈에 여전히 남아있다.

엄마는 가을이 되면 뜨개질을 시작한다. 매년 커가는 자녀들을 위해서 작년 옷들을 푸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마루 한 가운데 있는 난로 위에는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주전자의 입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뜨개옷에서 풀린 꼬불꼬불한 라면 실들을 매끈한 국수 실들로 만들어 준다. 그 실들을 엄마는 다시 동그란 공 모양으로 감는다. 그녀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실이 공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쳐다본다. 그녀는 그 과정이 지루해도 엄마 옆이 좋았던 것 같다.

다양한 색의 많은 공들이 바구니에 한가득 쌓여진다. 그러면 신들린 듯한 엄마의 뜨개질이 시작된다.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우리들이 마당에서 노는 것을 보면서도 엄마의 손을 멈추지 않고 바늘을 놀리다. 그 결과는 다양하다. 니트 티셔츠, 바지, 양말까지 겨울의 모든 옷은 털실 옷이다. 작년의 작은 옷을 풀어서 뜬 옷이어서 그녀의 바지는 항상 알록달록하다. 갈색은 작년 바지였을 거고, 바지 단 부분은 작년에는 웃옷이었다. 양말을 자투리 실들의 집합이어서 총 천연색이다. 가실 가실한 촉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뜨개질 하는 모습과 나의 옷들은 아직도 가물 가물하게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 여유롭지 못한 살림에 자식 셋을 키우려니 뜨개질은 엄마의 일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3.

“야, 이 사진의 인형 정말 무서워. 애나벨 저리 가라다.”

흑백 사진 속, 다섯 살 정도 된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은 크기는 그녀와 비슷하고 뜨개질로 몸통을 만들고 솜을 채워 넣었다. 지금 보니 인형의 옷도 그녀의 옷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엄마의 손에서 생산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녀의 옷도, 그녀의 인형도, 그녀의 양말도...

그러나 그녀는 엄마의 손재주를 닮지 못했다. 어눌한 손놀림으로 만든 목도리를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막내야, 이리 와서 서봐.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치수 좀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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