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 영화, 시, 소설

by 김영현

영화가 좋다길래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원작이 있다길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시가 있다길래 시를 감상했다.


결론은 모두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국어교사였지만 이혼 후 남편과 시댁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그 후로 술에 의존하다 알콜 중독자가 된 여주인공 영경, 성실한 공업사 사장이지만 사업에 실패한 후 아내에게 재산을 다 뺏기고 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을 지니고 있는 신용불량자 수환. 이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함께 한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여주인공 영경이 만취하여 읊는 김수영의 ‘봄밤’이라는 시다. 이 시에는‘서둘지 말라’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두 주인공 영경과 수환은 서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둘 다 내일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삶이다. 사회에서 밀려난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고 함께 요양 병원에 입원하여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들은 서둘러야 한다. 서둘러서 무언가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할 듯하지만 그들은 나빠지는 상황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서두르지도 극복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생들을 희생해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만족해 나간다. 그들은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여 분자엔 장점, 분모엔 단점을 대입한다. “분모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분자라도 늘려야지”라는 수환의 말처럼 분모가 큰 사람들이기에 분자를 늘리기 위해 분모만큼이나 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수환은 그 희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 결과 영경은 기억을 놓아 버리며 작품은 끝이 난다.

분명 흑백영화가 아님에도 흑백영화를 본 듯 하여 다시 영화를 열어 본다. 분명 흑백이 아니다. 목련꽃이 피었음에도 봄이 아닌 스산한 가을의 밤 풍경을 본 듯한 느낌이다. 수환이 영경을 업고 집에 돌아올 때도, 요양 병원에서 외출을 하는 영경을 보내는 수환의 모습에서도 모두 분명 색이 있음에도 내 머릿속에는 색이 사라진 듯하다. 이들의 암울함이 모든 색을 먹어버렸다.

‘이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지금 나의 답은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가능하다. 어떤 형태로도 사랑은 가능하다’라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건강이 나빠도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할 수 있다. 드라마처럼 꼭 재벌이어야 하고 얼굴이 예뻐야만 잘 생겨야만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공평하다. 시간이 부족한 사랑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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