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친구같은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by 김영현

<편지>(1997, 이정국), <약속>(1998, 김유진)과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진 멜로영화이지만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 두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편지와 약속이 관객에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마지막에 눈에 고여있던 한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리게 만드는 감정의 절제를 통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 감정의 절제와 일상성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사진사 정원(한석규)과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이 8월 더운 여름부터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까지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남자 주인공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뻔한 스토리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죽음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고, 사랑과 더불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그려진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친절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사진사이고 항상 호탕하게 웃는 정원의 모습, 열병을 앓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사랑이 아닌 피곤한 몸을 잠시 기대고 죽음 앞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힘이 되는 다림과의 사랑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가 멜로 영화임과 더불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휴머니즘 드라마일 수 있게 한다.


# 정적이고 일상성을 살린 영상미

많은 멜로 영화가 욕망 또는 열정 등 감정의 기승전결의 흐름이 강렬하고 직관적으로 표현된다면 이 영화는 절제된 감정을 드러내는 정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주인공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아이들과 정원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정원은 계속 뒷모습이고 아이들 세 명의 얼굴이 비춰진다. 다림은 그 아이들 뒤로 조용히 등장하고는 주인공이지만 아이들에 의해 가려진다. 고정된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배우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정원과 다림이 우산을 함께 쓰고 설레는 마음으로 말없이 길을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멀리서 배우가 다가오면서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까지 긴 시간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일상적이면서도 정적인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하여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후반부에 다림의 감정이 폭발되는 장면에서도 동일하다. 다림의 뒷모습, 다림이 아웃되고 20초 가량 카메라는 불꺼진 사진관만 비춘다. 다림이 프레임에 다시 등장하며 돌을 던지는 씬에서 대사도 없고 어떤 음향도 없지만 다림의 절절한 그리움이 절제된 형태로 고스란히 관객에게 잘 표현되고 있다. 카메라가 다림을 쫓아 움직였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정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롱테이크 숏을 많이 사용하였다. 다림이 정원에게 나이와 결혼 유무 등을 묻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사진관을 옮겨 다니며 질문하는 다림을 쫓아가고 정원이 대답을 하지만 카메라는 정원에게로 옮겨지지 않는다. 장면 전환을 줄여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늘리고 정적인 흐름을 깨지 않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카메라의 높이는 하이 앵글 숏이나 로우 앵글 숏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눈높이 맞춘 아이 레벨 숏을 사용하여 정원의 사랑과 죽음을 일상적인 생활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관객에게 감정의 안정성,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삶도 사랑도 죽음도 모두 인간의 일상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죽음도 죽은 자도 우리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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