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르'
“난 아무래도 나중에 많이 골골할 꺼 같아. 많이 아프면 스위스 가서 안락사 할꺼야. 남편한테도 이야기해 놨어. 나 안락사 하고 나면 와서 시신 수습 해달라고...”
술 한잔 한 후 내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영화가 바로 아무르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 갑자기 아내 안느가 마비 증세를 일으키며 영화는 전개된다. 남편은 병원에 입원하기 싫다는 안느의 요청에 따라 가정에서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돌본다. 일상적인 생활은 깨지고 헌신적인 간병에도 아내의 몸과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아내의 발병이 이루어졌던 부엌, 아내의 병수발이 이루어지는 침실, 딸 또는 손님 접대가 이루어지는 거실 등 대부분 집 안의 제한되고 닫혀진 공간이 남편의 답답함을 표현한다. 단 한 곳 큰 창이 뚫려 있는 통로만이 새들과 함께 남편의 숨통을 틔워준다. 딸, 간병인과의 사이도 틀어지고 시간이 지나며 남편은 서서히 지쳐간다. 결국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사라진다. ‘사랑했기에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well-being’보다 ‘well-dying’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노년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해결책은 가지지 못한 것 같다. 프랑스는 우리 나라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의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다. 내 손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보며 이제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닐 수 밖에 없다는 먹먹함과 더불어 존엄사, 안락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본다.
영화 중 남편이 불친절한 요양사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언젠가 당신이 환자를 대하듯 똑같이 당해봐요.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말이요”
이 사회에서 어디에도 발디딜 곳 없고 반항할 수 없고 인정받을 수 없는 노인의 모습을 표현한 듯하여 오늘 하루 이 대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