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힘, 나를 바꾸는 힘’
BCD(Birth Choice Die)법칙
우리는 태어나서 죽음을 달려가고 있다. 죽음을 달려가는 그 사이 수많은 선택들을 한다. 하물며, 오늘 아침 내가 몇시에 눈을 뜰지, 아침식사는 가볍게 건너 뛸지, 푸로틴한잔이라도 마실지도 선택이다. 우리의 선택은 무겁게 느껴지는 상황도 있지만,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선택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선택이 무거운지, 가벼운지는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사실은 명확하다 하지만, 언제 죽는지에 대한 불명확함을 가지고 살아간다. 만약 내가 죽는 날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땠을까? 분명 내가 지금 당장할 선택들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1시간 뒤에 죽는다는 걸 알게된다면?
만약, 3개월 뒤에 죽는다는 걸 알게된다면?
아니면 10년?
어쩌면 지금 당장 가야하는 학교를, 회사를 안갈지도 모르고 정말 원하는 것을 집중하거나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소중해질 것이다. 남겨진 시간에 대해 명확함이 있다면, 모든 순간에 선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치열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억울하게도 사람들마다 ‘선택권’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는 부유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해보고 싶은 일을 고민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과 다르게 지금 당장의 생계 문제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끔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할머니, 부모님, 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가 편찮으시고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매월 마이너스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20살이 된 기점에 언니는 대학교를 진학하였고, 나는 공부를 할 형편이 아닌 할머니의 병원비를 보태야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환경에서도 언니와 나는 다른 선택을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공부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한 반면, 언니는 “지금의 나의 삶이 중요해! 당장 대출을 받더라도, 나중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돼”라고 진학을 선택했다. 그럼 내가 정말 선택권이 없는게 맞았던 걸까? 아니다. 사실은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은 나’를 선택한 것이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힘, 나를 바꾸는 힘’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걸 바라는 마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다. 수많은 환경의 변화는 내 선택으로 못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서 부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지, 긍정을 찾아낼 것인지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긍정들을 쌓아 올리고 매일 하루에 하나씩을 좋은 ‘선택’을 하게되면 그것 또한 복리가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 내가 피곤한 나머지 침대에 조금 더 누워있다가 지각을 하는 것도 내가 선택한 일이다. 나는 지각을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나태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작은 선택에도 파생되는 선택들이 있다는 걸 명심해보자. 내가 오늘 기꺼이 누군가에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결정해보자. 이러한 결정들이 쌓이면 내 인생은 어쩌면, 조금 달라질지도.
세상을 바꾸는 힘은 아주 작은 곳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나를 바꾸는 것이다. 나의 변화가 나의 가장 주변에 있는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들이 바뀌면 또 그 주변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힘은 레버리지가 생겨서 그렇게 사회가 바뀐다고 한다. 나는 엄청 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고로 믿어보고 선택하자.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