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감은 에너지를 만든다.
2026년 3월 31일,
나는 ‘빼박’ 만으로도 서른이 되었다. 어릴 적에는 이런 말을 들었다.
10대는 시속 10km, 20대는 20km로 시간이 흐른다고.
그런데 서른이 되어 보니, 나는 속도보다 ‘무게’를 더 느낀다.
시간은 늘 빠르게 흘러갔지만, 지금의 나는 고민 하나하나가 묵직하다.
결혼, 내 집 마련, 출산, 육아, 부모 부양, 직장, 은퇴 준비....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처음’이고, 또 어려운 걸까.
그 길을 걷다 보면 먼저 해본 친구, 먼저 겪은 언니, 부모님이 유난히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무거운데, 앞으로는 더 무거워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임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나는 공감, 위로, 동정 그 어딘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고, 위로는 그 감정을 달래고 안정시키는 것이며, 동정은 상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차이는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말했는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같은 자리에 서서 감정을 함께 느꼈는지,
조금 위에서 안정시키려 했는지,
혹은 더 위에서 내려다보며 평가하고 있었는지.
그 위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전달된다.
나는 또래보다 조금 이르게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이제 막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는 친구들에게 나름 공감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어떤 순간에는 ‘내가 다 알아’라는 마음으로 공감이 아니라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정말 그들에게 필요했을까.
나 역시 첫째를 키울 때는
예민한 것도 많았고, 불안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키워보면 별거 아니야”, “그거 대세에 지장 없어”라며 그때의 고민을 쉽게 덮어버리기도 했다. 최근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 작은 생명을 키우고 있다. 문득 첫째 때 육아우울증으로 많이 울던 내가 떠올라잘 지내고 있는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뜻밖의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은지야, 내가 육아를 해보니까 네 생각이 나더라. 너 힘들다고 티 낸 적 없잖아. 근데 이 과정을 겪으면서도 밝게 지냈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였더라.”
마치 내 마음의 숨은 공간을 들킨 기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참 좋았다.
그 공감은 하루를, 그리고 또 일 년을 다시 열심히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육아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책임, 사명, 사랑, 그리고 성장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나 사실 이렇게 힘들었어”라고. 어차피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나만 유난히 힘든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마음 한편에서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어쩌면 이해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조차도 결국 내가 만들어낸 기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남에게서 공감을 찾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먼저 해주고 싶다.
“오늘도 잘 버텼다.”
“오늘도 충분히 해냈다.”
그렇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가장 단단한 자존감이 아닐까.
지금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아이를 키워내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을 차곡차곡 해내고 있는 중이다.
잠 못 드는 시간들, 신체의 변화와 싸우는 순간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당신은 이미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