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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에게 감사해요

by 쥬디

우주는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품어온 바람을. 그리고 때가 무르익고 가장 좋은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내주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우주는 또 하나의 부모이며 또 하나의 스승이다. 내 소원과 희망을 들어주기 위해 넉넉한 품으로 지켜보고 응원하며 애정을 보내고 있었다. 눈앞에 일에만 급급해 비좁은 마음으로 살아갈 때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괴로운 비바람 속에서 울고 있을 때는 햇빛을 보내 격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책을 읽으며 막연히 작가의 꿈을 갖게 됐다. 초등학교시절 방학 때 일기장을 내면 선생님이 놀라워하며 문장력을 칭찬했고 교내대회 교외대회 글쓰기에 나가면 상을 받았다. 더 많은 책을 좋아했고 마치 작가가 되는 게 당연한 상상에 빠졌다. 책뿐만 아니라 극장에서든 티브이 앞에서든 영화도 즐기며 좋아했고 애니도 좋아했다. 이대로 나는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브론테’나 제인에어의 ‘샤롯브론테’처럼 천재 작가로 천재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주는 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십 대가 되면서 작가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나로서는 넘을 수 없는 거라고 스스로 한계를 짓고 말았다. 혼자 읽고 끄적이는 것만 하는 정도로 부풀었던 꿈의 바람을 빼고 말았다. 가장 빛날 청춘의 시기에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이 우주를 한 바퀴 돌아 50대가 되었다. 우주는 여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이따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넌 작가가 되기로 했었잖아.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놓치지 마’라는 소리를. 여전히 나는 책과 영화와 애니를 좋아했고 글도 끄적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서 꿈을 놓지 않고 품고만 있었다.



어느 날 생각만 하지 말고 내가 쓰고 나만이 읽더라도 작가 한번 해봤다고 완결은 지어보자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얼른 써보고 끝내자라고. 그래서 도서관 글쓰기수업과 독서모임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면서 한 발짝 다시 작가의 꿈에 다가갔다. 마침 인천에서 ‘읽걷쓰’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책 쓰기 교육과 무료로 공저를 내게 되면서 ‘내가 어떻게 써?’라고 한계를 그었던 선을 겨우 넘게 됐다. 그다음부터는 조금 더 수월해졌다. 도서관 밤샘 글쓰기도 해서 공저를 내고 독서모임에서도 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자가출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었다.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다. 마침 지인이 책과 강연 백일백장을 소개해 주었다. 블로그를 거의 쓰고 있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그냥 도전했다. 2024년 1월 1일이 첫 시작이었다. 매일 500자 이상 쓰다니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글의 수준을 떠나서 해낸다는 마음을 밀고 가면서 마침내 완주를 했고 그다음 단계를 찾던 중 호프맨작가님의 인문학강연을 알게 되어 온라인강연을 듣게 되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함께 인문학향기카페에서 독서모임과 미니강연을 하게 되었다. 처음 미니강연을 하라고 제안받았을 때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강연을?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는 장점은 ‘이 나이에 못할게 뭐 있어?’라는 점이다. 그냥 하겠다고 하고 오랜만에 몰입을 해봤다. 젊은 날 좋아했던 톨스토이 작품을 다시 탐독하고 루쉰작품도 새로운 시선으로 읽고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덜덜 떨며 강연을 하고 주변 사람에게 커뮤니티에 들어오게 설득하고 다녔다.


목표가 생겼다. 그래! 전국백일장도 나가고 브런치북에도 도전하자.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나간 백일장은 감회가 새로웠다. 우주를 돌아 돌아 중년의 나이에 다시 찾아왔구나. 오랜만이다. 반가워. 내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아직 절실하게 이렇게 써야지 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련의 여러 도전을 통해 많이 가까워져 가고 있음을 확실히 느낀다. 블로그와 브런치 글을 매일은 아니지만 이삼일에 한 번씩 발행하면서 그 길에 들어섰다. 책만 읽고 글 쓰는 게 아니라 나를 넓은 세계로 자주 데려갔다. 영화관, 미술관, 콘서트, 문학관, 북콘서트, 책과 강연, 원데이클래스, 도서관, 서점,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가본 적 없는 도시들을 거침없이 찾아다녔다.


내가 오래전부터 해온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어려울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지방에 가있어 주말부부이고,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내 손길이 크게 닿지 않아도 되어 더욱 가능했다. 살림을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잔소리 듣기는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완벽할 순 없다고 그냥 인정하기로 한다.


날들은 지나가는 게 아니다. 날들은 모인다. 쌓인다. 그리고 이루게 한다. 그리고 알았다. 우주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고 지켜보고 있었고 이루게 해 줄 때를 기다려주고 있었음을. 언젠가 봐야지 했던 책들과 영화는 기어이 보게 되었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도 결국 만나게 됐다. 가고 싶던 장소도 기어이 가게 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결국 하게 된다. 우주가 그렇게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면서. 눈물 나게 감사한 우주다.


우주에게 말한다. 내년에는 세계 인문학 여행을 갈 거야. 신춘문예에 도전할 거야. 6월에 폭풍재미와 감동의 책을 내서 성공할 거야. 인문학모임도 계속해서 함께 성장할 거야. 우주야 들었지? 알고 있지? 우주는 내 마음에 있어.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에 다시 눈을 뜨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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