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명절날 오래간만에 일가친척이 모이면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중 삼류 드라마에 나오는 형제자매들 간의 리얼한 재산 싸움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사실 삼류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대기업 형제들 간에도 이런 이야기는 매스컴에서 보아온 일들이다. 이럴 때 보통 드는 생각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구나. 그 많은 재산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될 일이지. 어떻게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고소하면서 피 터지게 싸울 수 있나!’ 정도였다.
이번 명절 때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어떤 부모가 큰 공장을 운영하던 소유한 땅이 보상을 받으면서 엄청난 돈이 생겨 자녀들에게 재산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시작되어 한 아들이 부모 돌아가시기 전에 반강제로 자기가 모든 재산을 다 가지기로 법적조치를 해서 형제간 관계가 아주 나빠지고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돈이 없었을 때가 오히려 행복했다고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등, 누군 주고 누구는 안 주고 해서 그렇다는 등, 사이좋게 나눠 주었어야 하는 등, 부모 잘못이 크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다. 나는 여전히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구나 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되면서 관점이 좀 달라 보이는 게 아닌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유전자가 설계한 아주 정밀하게 잘 만들어진 살아있는 기계라는 말을 전제로 유전자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데 읽을수록 너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조금 무섭기도 하다. 책에서는 뻐꾸기 알 예를 들고 있다.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뻐꾸기 알을 낳고 도망간다. 뻐꾸기는 다른 알보다 일찍 부화한다. 태어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같은 둥지에 있던 수양자매알을 힘겹게 등에 올려 이동해 나무 아래로 떨어트려버린다는 것이다. 뻐꾸기만 그런 게 아니고 제비도 그런 짓을 한다고 설명한다. ‘맨 처음에 태어난 새끼는 다음에 부화되는 동생들과 부모의 투자를 놓고 결국은 경쟁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그의 생애의 첫 번째 일로서 우선 다른 알을 둥지에서 내던지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뻐꾸기 새끼와 그 수양 형제와의 관계에 비하면 같은 부모를 가진 형제간에는 훨씬 진한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차이는 단순히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느닷없는 형제 살해가 진화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정도가 약한 기존의 사례는 한 아이가 얻는 이익이 형제자매에게 피해의 형태로 그가 지불해야 할 비용의 두 배 이상이 되는 조건에서라면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이유 시기의 예와 같이 부모 자식 간의 이해가 실제로 대립한다.’
이 내용을 알게되면서 형제들끼리 분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결국 생존과 번식이 주 목적인 ‘이기적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해서 벌어진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견해를 갖게 됐다. 소름 돋을 뿐 아니라 좀 무섭기까지 하다.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라면서 그리고 실제 형제를 키우면서 느끼고 보아온 경쟁과 질투의 감정들이 조금은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나 외국의 왕족 역사에서도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예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배후에 ‘이기적 유전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모든 걸 유전자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인간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본능을 중재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인간은 유전자가 설계해 그저 ‘태어나, 살고 죽어라’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단순히 유전자만 전달하는 개체가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교육을 통해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인간이기에 철학이 생겨나고 종교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인간만이 여타 동물과는 다르게 부모자식 관계 외에 스승과 제자라는 놀라운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누구인가와 무엇인가가 같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인간과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의 사실을 알고 그 위에서 결과적으로 인간을 위한 일이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정신과 물질세계를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이러면 안 된다, 저래야 한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공염불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이 책을 반 이상 읽고 있는데 인간의 생물학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고 말이나 행동들이 왜 그렇게 나왔나 하는 점에 마치 퍼즐 조각 맞추는 묘한 기분이 든다.
어찌 보면 생물학에서 벌거숭이 그대로 관찰하고 설명하려는 인간을, 인문학에서는 몸을 보호하도록 속옷을 입히고 색색의 화려함으로 겉옷을 걸치게 하고 모자를 씌우고 장신구로 꾸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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