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싸움

50대 50

by 쥬디

이번 연휴는 여느 때와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냈다. 보통은 시댁이나 친정에 가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번 명절은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고 위험해서 시댁은 명절 당일 낮에 잠깐 다녀오고, 친정은 가지 않았다. 엄마가 조금 서운해하시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날 가기로 했다. 사실 시댁 가는 것도 건너뛰고 싶었지만 가지 않으면 연휴 내내 남편의 압박에 더 피곤해져 얼른 다녀오는 걸 택했다. 남편은 사람에게 의무와 권리가 있다면 의무를 해내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주의이다. 자신이 부모님에게 매일 전화하고 애틋해하는 걸 나와 아이들에게도 의무처럼 반강제적으로 행하길 요구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래야 하나 보다 하며 따라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형식적으로 하는데 반감이 생겨 안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남편과 기나긴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때 알았다. 평상시 ‘허허’하는 웃음 뒤에 숨겨진 남편의 어마무시한 고집의 깊이를. 시댁에 해오던 행동을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다. 억지로 하는 걸 그만두었다. 남편은 화를 내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살살 달래다가 윽박지르다가 결국 내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자 반포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한발 물러난 듯한 모습을 취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한테서 아이들로 넘어간 것뿐이었다. 아이들한테 이제는 손자로서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방문과 함께 이럴 때는 이래서, 저럴 때는 저래서 전화드려라라고 길들이기 시작했다. 과연 착한 큰아들은 점점 남편이 하라는 대로 살짝 불평은 하면서도 따라갔다. 나는 너무 지나칠 때만 한 마디씩 하고 더 이상 뭐라 하면 싸움이 날 거 같아 그냥 두었다.

이번 연휴에 집중해서 읽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나와 남편이 왜 이렇게 대치를 하는지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


“유전자의 50%를 서로 공유하고 있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해의 대립이 있는데 하물며 서로 혈연관계가 없는 배우자 사이의 다툼은 얼마나 격렬하겠는가. 배우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같은 자식에 대해 서로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들에게 투자한 각각 다른 50%의 유전자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셈이 된다”


배우자 간의 대립이 유전자 이론에서는 충분히 설명 가능한 것이다. 이외에도 남편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나를 통제하려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게 크지 않나 싶다. 물론 나 역시 남편을 통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기싸움이 너무 자주 일어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 피곤하다. 조금 더 맞춰주고 양보하는 쪽이 서로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하려는 보통 유전자를 넘어서는 초울트라유전자의 역할인 걸지도 모른다.


공동 저서를 마무리 중이라 1월 31일에 북카페를 갈 예정이었다. 강동구에 사는 언니에게 들러 함께 준비한 선물을 받아서 마포구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눈이 와도 굳이 차를 쓰겠다고 했다. 남편은 전날부터 대중교통 이용하라고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당일 나가기 직전까지 퍼부어대는 잔소리를 뚫고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중간중간 전화와 문자를 수시로 하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 하니 눈이 와서 걱정이라는 둥 언제 오냐는 둥 하는 답장이 왔다. 작가님들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이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히려 걱정의 문자가 진짜 걱정을 끌어들인다. 쌓이는 눈은 아니어서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어머 위험하네 눈이 와서’라는 쪽으로 생각이 흐르고 만다. 사실 눈이 오지 않을 때보다 위험한 건 맞다. 그렇지만 이렇게 호들갑 떨면 없던 위험도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더 든다. 겉으로 침착하게 작가님들과 저녁까지 다 먹고 피곤하지만 회관까지 들러 볼일을 보고 집에 거의 다 와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남편은 싸울 거처럼 공격적으로 전화를 받는다. 어디 기싸움 한판 전화로 벌여볼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 그냥 쫌따 가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현관문을 여니 마침 애들은 방에 있고 남편 혼자 거실에 있길래 이때다 싶어 나는 쏘아붙였다.

“그렇게 나를 통제하고 싶어? 전화는 왜 그렇게 많이 해? 기싸움이 그렇게 하고 싶어?”

나도 모르게 ‘이기적 유전자’ 책을 봐야 뭔 말인지 알 수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걱정 돼서 그랬다는 식으로 쳐다본다. 나는 애들이 인사하러 나오기 전 더 세게 한방 날려버렸다.

“한 번만 더 전화해 봐. 그땐 차단이야!”

세상에 남편 전화를 차단이라니. 와 내 유전자가 팩폭을 날린다. 애들이 나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엄마 다녀왔어”

하고 웃었다. 아! 연기 너무 어렵다. 자존심과 기싸움 후유증으로 다음 날 나는 영등포구를 하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는데 몇 번을 갈아타고 도서관까지 들렀다가 남편 생일이라 케이크에-의리를 지키는 건 너무 힘들다-장까지 봐오느라 발바닥과 어깨가 아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내 유전자가 또 발끈했다.

“장 봐왔으니 당신이 애들과 차려 먹어. 난 너무 피곤해 잘 거야. 차로 이동했으면 편했을 일을 아주 고생을 시키네 시켜.”

남편은

“미리 전화했으면 데리러 갔지”

마치 베풀 수 있었는데 당신이 기회를 안 줬다는 거처럼 말한다. 얄미움 작렬이다. 누가 들으면 베포가 넓은 줄 알겠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세 사람이 밥 해 먹는 소리가 들리고 내 방을 번갈아 가면서 열길래 자는 척했다. 케이크는 내가 먹고 싶었던 딸기타르트이고 의리는 지켜야겠기에 늦은 밤 나와서 초를 켜고 인상 쓰며 축하 노래를 불렀다. 케이크가 내 배고픈 배를 채워주는 저녁밥이 되고 말았다.



“이 놀랄만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양식이 유전자가 아닌 오히려 문화에 의해 주로 결정됨을 시사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배우자의 대립에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배우자간에 기싸움을 하는 이유를 알았지만 인간은 문화에 의해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친정부모님은 사이가 좋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부부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빠가 이타적 유전자로(가정의 평화를 위해 양보한다는 이기적 유전자일수도) 많은 걸 양보하고 엄마를 배려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로 인해 자녀들은 마음 편히 자라날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생물학적이든 문화적이든 인간을 알고 대처하는 속에 가정의 평화도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명절이었다.


#이기적유전자 #리처드도킨스 #배우자간의대립 #양보는힘들어 #문화의힘 #초울트라유전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산 싸움에 숨어있는 이기적 유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