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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인간의 도리

k는 억울해

by 쥬디

k는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하다.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불그스름하며 매혹적이다. 근육운동을 해서 어떤 옷을 입어도 핏이 남다르다. 어딜 가나 젊은 여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다. 카페에 앉아있으면 여자가 먼저 와서 말을 건다. k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자 친구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사귀다 헤어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저절로 다른 여자 친구가 다가온다. 그런 k를 친구들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투한다. k는 모든 여자들에게 상냥하다. 여자 친구에게도 여자 사람친구에게도 그렇게 대한다. 그래서 여자 친구에게 종종 불평하는 소리를 듣는다. k는 다가오는 여자를 반기고 떠나가는 여자를 말리지 않는다. 어느 날 헤어진 여자친구는 k가 바로 다른 여자 친구를 사귀는 걸 보고 상처를 받는다. 속에서 질투의 화산이 폭발한다. 없던 루머를 만들어 흘린다. 어느 순간 k가 다니는 회사에서 k는 못돼 먹은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난다. k는 성실하게 일하는 남자다. 갑자기 k가 궁지에 몰린다. 상사도 동료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한다. 업무로 k를 평가해야 하는데 바람둥이라는 꼬리표를 만들어 평가하기 시작한다. k는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다닐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에 처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꾸며냈지만 드라마나 영화 혹은 현실에서 종종 있을법한, 들어봤을 법한 스토리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전에는 그냥 우리가 배우고 답습해 온 도덕적인 기준으로 k가 잘생긴 외모로 바람을 피우는구나, 어머나 헤어지자마자 금방 사귀다니. 인간성이 안 좋네. 등등의 암묵적인, 그러나 생각보다 힘이 센 ‘도리’라는 기준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거의 다였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니 생물학적인 면에서 k를 보면 k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라면 우수한 유전자를 지니고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생존과 번식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삼는-한 것뿐이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바람 펴도 된다.라는 말인 것 같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유전자의 힘이 세다. 아니, 인간은 유전자가 만든 정밀하게 살아있는 기계라는 이론으로 보면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이야기는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반대로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유전자는 본능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그저 움직일 뿐이다. 유전자가 ‘바람둥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욕 중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 이란말이 있는데 인간도 생물학적으로 보면 그저 ‘짐승(동물)’이다. 이게 욕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하는 말일 수 있다. 다른 욕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물 이름이 많이 나온다. ‘oo 같은 oo’ 동물을 비하하는 욕들은 상대적으로 인간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말인데 다윈의 ‘종의 이론’에서 모든 생물이 공통의 조상에서 분화되었으며, 변이와 선택에 의해 다양성이 형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동물과 같은 조상이었다는 이론이니 동물 측에서 이런 욕은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사고체계를 갖고 있어 유전자에게 저항하기도 한다. 생각하고 체계를 만들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도리나 법등을 만들어 어릴 때부터 교육시킨다.



도리를 생각해 봤을 때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중에 나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면에서 보면 이제 이해가 간다. 나도 모르게 ‘아 저 사람은 지금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정당화는 아니다.-이기적이란 말이 왠지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분법적으로 이기적, 이타적이란 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타적이란 말 안에 어쩌면 이기적인 뜻이 숨어 있기도 하다.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외치자는 말 안에는 평화를 유지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사니까라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사니까’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유한한 존재에 무한한 존재성을 부여하고 마치 전지전능한 환상을 만들어 쏟아붓고 있으니 인간이 참 힘든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너무 지나치게 인간을 신격화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생물학적인 시각에서만 봐도 안 되고 중도와 중재가 필요하다.



#이기적유전자 #k는억울해 #중도와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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