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극과 극

강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by 쥬디

문화회관에서 ‘한 사람을 소중히’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를 주제로 패널 전시와 엄마들의 숨은 끼와 재능으로 만든 그림이나 조형물 책 등을 전시하는 모임을 열었다. 엄마들의 솜씨에 감탄한다. 집이 창작놀이터고 전시관이기도 했겠구나 싶다. 모두가 무명의 위대한 예술가들이다. 패널과 전시품 중간에 테이블을 놓고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카페처럼 음악도 틀어놓았다. 그곳에 극과 극의 두 여인이 다녀갔다.



오후 3시가 넘자 한 여인이 초등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준비한 사람들이 반갑게 환영인사하며 맞이한다. 여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당당히 테이블 의자에 가방을 놓는다. 먼저 전시품 쪽에 가서 여유 있게 큰소리로 감탄사를 남발하며 감상한다. 옆에 안내자와 금방 친해지고 굵고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더니 감상자가 아니라 주최자 모드가 되어간다. 아이는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모자는 따로 행동한다.


도슨트에게 SDGs-2015년 유엔에서 193개국 만장일치로 채택해 2030년까지 시행할 국제사회 최대 공동목표-패널 전시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얼른 설명해달라 한다. 도슨트에게 이것저것 질문까지 한다. 환경에 대한 실천으로 생수병 무라벨 제품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얼른 주최 측이 준비한 생수병을 가리키더니 무라벨이 아니네요? 하고 직격탄까지 날린다. 도슨트가 땀을 흘린다. 주최 측 사람과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주최 측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기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인지, 아이들한테 몇천 권을 읽어주었는지 투잡을 하면서 얼마나 바쁘게 목표를 도전하는지 등등 신나게 말한다. 준비한 떡과 간식을 쉴 새 없이 먹으며 그칠 줄 모른다. 얼굴은 더 홍조를 띠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실컷 즐긴다. 이미 주최자가 돼버렸다. 사람들로 둘러싸여 신나고 자기 명함도 얼른 돌린다. 주는 선물 잔뜩 챙기고 아들과 당당히 문을 나간다.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문자가 바로 날아온다.



잠시 후 지인을 따라 억지로 한 여인이 들어온다. 몸은 힘이 없는지 구부정하고 회색 운동복 차림에 대강 긴 머리를 감고 말린 채 부스스한 머리에 창백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눈을 내리뜨고 지인을 따라 들어오다가 주최 측 사람들이 반가워하며 다가가자 흠칫 놀란다. 테이블에 앉더니 몸은 더 움츠러들고 눈은 불안해하며 어쩔 줄 모른다. 배고프다고 해서 차와 다과를 갖다 주는데 꼼짝 안 하고 먹는다. 지인이 전시부터 볼까요? 아니면 패널부터 볼까요? 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힘들어요 라는 말만 하며 긴 머리칼 안으로 얼굴을 숨긴다. 지인 옆에 주최 측 사람이 와서 앉아 말을 걸어도 똑바로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힐끗 볼뿐이다. 사람들이 와서 친한 척을 하자 몸을 빼며 부담스러 어쩔 줄 모른다.


사람들이 한두 명 빠져나가고 지인과 둘이 남자 그제야 휴 하고 숨을 쉰다. 그러더니 전시품을 하나하나 보러 일어난다. 지인은 참 대단하죠? 하고 말하는데 여인은 이런 거 집에 있으면 먼지만 쌓이죠.라고 김 빠지는 말을 내뱉는다. 패널 쪽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온다. 갑자기 자리로 가더니 자신의 가방을 메고 온다. 눈빛이 다시 불안하다. 지인은 얼른 여기를 나가야겠다 싶어 같이 빠져나온다. 여인은 접시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야만 될 거 같아 남기지 않았더니 배부르고 소화 안된다는 말을 한다. 올 때 배고파 도넛 하나를 사 먹었다고 한다. 왜 음식이 있을 거라는 말을 안 했냐? 했으면 도넛 안 사 먹었다는 말을 한다.


삼월이 날씨 변수가 많아 낮에는 따듯했는데 오후 5시가 넘으니 쌀쌀하다. 지인은 너무 피곤해 집에 가고 싶은데 여인은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고 한다. 걸음을 잘 못 걷는다. 힘들다는 말을 되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다. 눈빛은 초점을 잃었고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지인은 그런 여인의 모습을 보며 점점 기가 빨리고 춥고 힘들어진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멘붕이다. 간신히 동네 한 바퀴 돌고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다준다. 마침 구세주 버스가 온다. 지인은 여인에게 얼른 타라 한다. 다행히 탄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고 지인은 뛰다시피 집으로 향한다. 너무 춥고 지쳤다. 지쳤다.


극과 극의 여인을 보았다. 생명력이라는 힘은 우리 몸 중심에 자리 잡고 얼굴로 몸으로 입으로 다 표출된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고 삶을 지탱하는 샘물이다. 샘물이 중요하다.


#생명력 #극과극 #SDGs패널전시 #SGI한사람을소중히 #인문학향기충전소 #나의중년은청춘보다아름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러드 다이아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