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에 아들에게서 시를 배우기 시작해 99세에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 둔 돈을 들여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한 시인이 있다. 바로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시인 ‘시바타 도요’이다. 1911년 도치기시 출생했고 어린 시절은 유복했지만 10대 때 가세가 기울어 음식점에서 더부살이를 했으며 한 번 이혼을 겪고 33세 때 재혼해 아들 겐이치를 낳았다. 남편과 사별 후 2013년 103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혼자 살며 시를 지었다고 한다.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라는 표현에서 따듯한 봄날 마당 안으로 들어온 다정한 햇살에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듯하다.
저금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시바타 도요
친절을 저금해서 쓴다니. 오랜 세월 동안 달관한 생활철학이 담겨있는 표현이다. 엊그제 연세가 많은 분을 만났을 때 연금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연금보다 더 좋은 게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 저금이라니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무릎을 탁 치는 표현이다.
말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시바타 도요
나이와 관계없이 말을 잘 못했을 때는 지우개와 연필로 고친단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내 맘대로 해도 돼 하며 반성하지 않고 넘어가는 꼰대가 아니고 미안한 말을 했을 때는 사과하는 사람으로 언제까지나 타인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전해진다.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시바타 도요
눈물이 날 만큼 따듯함과 상냥함이 느껴진다. 바람과 햇살을 초대해 수다 떨고 한바탕 웃는다. 비 내리는 날엔 비도 초대한다. 100세 할머니의 유연한 상상력과 어린아이 같은 보들보들한 마음이 시에 뚝뚝 묻어난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인생을 달관한 자의 여유랄까.
100세 생일을 기념하는 두 번째 시집 ‘100세’를 출간하고 103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지었다. 시인은 생애 청춘으로 살았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즐겼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 이 나이에 뭘 해? 라고 자포자기 하는게 아니고 자신만의 행복성을 짓고 또 지었다. 시인은 시를 통해 그 나이대 뿐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독자들에게 1세기를 지나오며 겪은 삶의 통찰을 눈물겨운 다정함으로 토닥토닥여 주고 싶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