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화문 교보문고, 탄핵 집회, 칼바람, 우정 어린 동행

목련화처럼

by 쥬디

토요일 오전 광화문 교보문고로 메이퀸작가님과 채코작가님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분홍 진달래 피어있는 앞산으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산 누빔재킷에 목도리까지 둘렀다. 광활한 서점에 도착하니 메이퀸작가님과 채코작가님이 먼저 와서 우리 공저를 손에 들고 보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셋이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더 찍으며 한동안 기쁨을 나누었다.

KakaoTalk_20250330_184346428_01.jpg

나오면서 나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을 가자고 제안했다. '미음완보, 전통정원을 거닐다' 전시와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 전시를 하고 있었다. 서점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광화문 일대에서 대통령 탄핵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화면에 한동훈 전 장관을 디스 하는 유치한 노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함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치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연설을 하고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인왕산과 경복궁과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 지켜보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나쳐가는 게 보였다.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지방 곳곳에서 차를 대절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추운 날씨에도 상경해 힘을 모으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광화문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칼바람이 옷 속을 더 파고드는 듯하다. 자스민 작가님이 인도의 거리풍경이 사람과 동물과 차가 한데 어우러져 아비규환이라 한 거처럼 메이퀸작가님도 여기가 아비규환이라고 말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미술관에 들어서는데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다. 전시가 무료여서? 아니면 모두 집회를 가서 그런 걸까? 마치 우리 셋이 전세 놓은 거 같았다.


미음완보는 작은 소리로 읊으며 천천히 거닌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정취가 있는 정원의 풍경이 음악을 배경으로 거대한 화면에 펼쳐졌다. 미디어 아트쇼 전시였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세속의 잡음에서 고요의 숲으로 순간 이동했다. 사계가 펼쳐지고 초록의 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미음완보는 단순히 정원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고 내면을 바라보는 심미적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현대의 분주함 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선조들의 발자취를 읊조리며 성찰하는 여정을 제시한다라고 쓰여있다. 폭포, 산, 밤하늘, 연못과 누각, 정원등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아트쇼로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거 같다.

KakaoTalk_20250330_185224660.jpg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 전시를 보며 그가 텔레비전과 기술적 매체를 예술작품에 통합하여 현대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비디오 아트스트로 시대를 한참 앞서간 선구적 예술가였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적인 예술가입니다”

와! 자부심이 엄청나다. 일본의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백남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세 사람은 인사동으로 옮겨 맛난 점심을 시켜 기다리는데 채코작가님은 그 틈을 이용해 내가 잘 모르거나 활용하지 않는 인스타나 영상 만드는 법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셋이 집중하느라 밥이 나온 지도 몰랐다. 채코작가님은 먹는 동안에도 열심히 설명하느라 밥이 다 식었다. 열성과 열의에 감동할 뿐이다. 등산 가방에 노트북까지 가져왔다. 지금 생각하니 지하철을 몇 번 타고 계속 걸어 다니고 엄청 무거웠을 거 같다. 우리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조금 구경하고 카페로 가서 다음 주 내가 강연할 영화 영상 보여주는 편집 법을 배웠다. 큰소리 땅땅 쳤지만 사실 영상은 안 해봐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채코작가님은 뭐든 해보자, 못할게 뭐 있나 하는 주의다. 몰라도 아는 척, 가만있는 게 제일 싫다고 한다. 뭐든 물어보라 해서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집에 가면 까먹을 수도 있는데 하고 살짝 걱정되었지만 또 물어보면 되니까 –좀 미안하지만-. 내 주변에는 어쩜 이렇게 열심히 살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KakaoTalk_20250330_184346428_02.jpg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리는 날씨와, 탄핵집회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한 권의 책으로 맺어진 우정 어린 작가님들과의 만남은 한풍에 꿋꿋이 피어난 아름다운 목련화 같았다.


#나의중년은청춘보다아름답다 #인문학향기충전소 #탄핵집회 #칼바람 #교보문고광화문 #세종대왕상 #이순신상 #메이퀸작가님 #채코작가님 #인왕산 #눈오는삼월 #아름다운목련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99세 시집을 낸 시인 '시바타 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