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을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플러스고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이너스일까? 마음은 그냥 마음일 뿐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편의상 붙인 표현일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싫어하는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요즘 주변에 지인 두 사람이 서로를 싫어하고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몇 달간 풀어지길 기다렸는데 풀어질 기미는커녕 골이 더 깊어진듯해서 마음이 무겁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이 일만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만 없다. 슬프기까지 하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그럴 수도 없다.
두 사람 모두 이해한다. 아니 이해라기보다는 그럴 수 있구나 정도다. 좋은 것도 마음대로 싫은 것도 마음대로 안된다는걸 아니까. 마음대로 됐으면 이 세상의 혼란이 많이 줄었을지 모르겠다.
이 세상은 양자장 안에서 움직여진다. 끌어당김의 법칙도 그래서 존재한다. 어젯밤 지인 두 사람을 생각하며 잠들어서인지 밤새 그들에 대한 꿈을 꾸었다. 내가 지인들 세계에서 아무 이유 없이 튕겨져 나가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따지기도 하고 오히려 잘됐다고 여기기도 하는 꿈이었다. 마음이 헤매며 서성거렸나 보다.
지구에도 지각, 멘탈, 외핵, 내핵이 있듯 마음에도 층이 있다. 불교에서는 안, 이, 비, 설, 신, 의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하는 감각기관과 몸과 뇌의 활동정보 등을 육식(六識)이라 해서 가장 윗부분에 있다고 설하고, 그다음이 무의식 분야로 칠식(七識)-말라식이라 하고 그 아래를 팔식(八識)-아뢰아 식이라 하는데 팔자 즉 숙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맨 아래 구식(九識)-아말라식-청정한 생명, 불계-이 있다고 가르친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이렇게 층이 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코 겉으로 보이는 단순 현상만으로 판별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거였다면 인류에 수많은 성인, 현인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다.
작을 때는 겨자씨 만해지다가 우주만큼 커지는 마음의 세계는 과학이 다 밝히지 못하고 있다. 밝힐 수도 없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 계산하기 어려운 분야가 마음이 아닐까. 마음은 보이지 않는데도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아파서 피를 뚝뚝 흘리기도 한다. 마음에는 무게도 있어 솜털처럼 가볍기도 하다가 천근만근 어마한 무게로 감당이 안될 때도 있다. 마음 하나로 달까지 가기도 한다.
마음에 값이 있을까? 마음지갑이 가벼워 불안 불안하다. 가득 채우고 싶다. 온도가 있다면 몇 도? 지금 내 마음은 아슬아슬 영상 5도. 향기는 무취. 맛은 쓴맛. 소리는 라흐마니노프 2악장 아다지오. 색깔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싶어 못 견디는 벚나무색.
마음에 울고, 웃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단순하면서 복잡 미묘한 게 마음이다. 자본주의에서 마케팅도 오직 마음을 얻어 지갑을 열게 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자신의 마음도 다스리기 어려우면서 하물며 타인을 다스리려 한다는 건 오만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고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분명히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마음에도 때가 있다. 얼어붙은 마음에도 봄은 오고 상처 난 마음에도 새살이 돋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 세상을 다스리는 자다. 마음을 얻는 자 세상을 얻는 자다.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