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때...”
아주 오래전 초등 6학년 음악 시간에 이 곡으로 실기시험을 본 적이 있다. 노래를 막 시작하는데 반에 뜸부기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애 얼굴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나를 보던 반 아이들도 따라 교실은 웃음의 도가니가 됐다. 한번 터진 웃음은 걷잡을 수 없어 다시 할 때마다 웃느라 시험은 엉망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웃음을 참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했지만 선생님이 쥔 볼펜이 알파벳 ‘C’라고 적히는 걸 똑똑히 보고 ‘좌절한’ 기억이 남아있다.
이 노래는 오빠를 그리워하고 집에 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 가사를 담고 있는데 나에게는 오빠가 없다. 언니만 둘이고 아래로는 남동생들이 있다. 언니들이 있어 나이 들어서도 친구처럼 지내서 아주 좋다. 그런데 어릴 때는 가끔 나도 오빠가 있었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두 언니 중 한 사람은 오빠였어도 좋았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시골 동네에 우리 집과 친하게 지낸 집이 있었다. 아빠와 그 집 아저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는데 그 아저씨에게 막내아들이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위 오빠이고 큰언니 또래였다. 늘 생글생글 거리며 말도 참 다정하게 해서 마치 언니 같았다. 자주 놀러 와서 우리 형제들과 한참을 놀다 가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이름보다 주로 별명을 지어 부르곤 했다. 부끄러움이 없던 시절 방귀를 뿡뿡 뀌었는데 언제부턴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방귀쟁이’라고 불렀다. 그 오빠도 나에게 그렇게 불렀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오빠가 군대를 안 가고 그 시절 방위근무를 하며 출퇴근을 하는데 버스정류장까지 20분 이상을 걸어가 차를 타야 하는 환경이었다. 아침이 되면 그 오빠가 현관문을 열고 같이 가자고 내 이름을 불렀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후다닥 나가서 같이 걸어갔는데 어느 날부터는 귀찮고, 둘이 걸어가는 것도 머쓱해서 나가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학교를 몇 번 지각했지만.
또 세월이 흘러 내가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나도 못 알아볼 정도로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오빠를 만나게 되어 나는 오랜만이라며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방귀쟁이, 웬 화장을 그렇게 진하게 했냐? 쥐 잡아먹었냐?(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좀 지워라 지워. 못 알아보겠다”
라고 다 큰 숙녀에게 거침없는 말을 날려 얼마나 무안했는지 말도 못 한다.
그런 오빠를 또 세월이 이젠 어마무시 흐른 뒤 바로 어제 언니랑 셋이 만났다. 이제 자녀들이 다 성인이 되었고 오빠의 자녀는 벌써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내가 공동으로 책을 낸 거에 오빠는 칭찬과 격려의 말을 했다. 흐뭇해하며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오빠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한다는 말이
“야 쥬디야, 너 요즘도 방귀쟁이냐?”
“...”
아! 오빠는 나를 아직도 그 옛날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구나. 몇 십 년 세월이 참 무색하다. 그렇게 물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하 하 하. 오빠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벚꽃이 반쯤 얼굴을 내민 4월에 오빠를 만나 우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재밌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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