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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by 쥬디

일상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보기다. 2016년에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봤다. 우리나라 지도를 정확하게 만든 조선후기의 지리학자이자 지도학자이다.


박범신 소설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고산자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한 글이 실렸던 게 떠오른다. 찌는듯한 삼복더위에 백두산을 8번이나 오르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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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많은 내용과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세 가지 포인트로 말하고 싶다. 첫째는 미친 지도쟁이 김정호이다. 둘째는 영화 곳곳에 터지는 유머코드다. 셋째는 권력으로 민중을 탄압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다.


우선 이 영화는 2017년 황금촬영상(조명상)을 받은 만큼 자연경관과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고산자는 김정호의 호다. 김정호가 전국 팔도를 짚신을 여러 켤레 바꿔 신고 산과 들과 마을 곳곳을 다니며 철저한 관찰과 조사를 하는 장면에서 사계절 자연의 풍경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백두산 천지의 하늘을 담은 파란 물, 독도 주변에서 노니는 강치를 담은 바다가 손에 다을듯하다.



첫째 미친 지도쟁이에 대해 말하자면 김정호는 정말 지도에 미쳤다. 하나뿐인 딸 ‘순실이’를 몇 년씩 홀로 두고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을 누빈다. 그 지도를 모든 백성들과 나누려고 목판 제작에도 혼신을 다한다. 딸과 여주댁이 천주교를 믿어 관아에 잡혀가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도 목판본을 선뜻 내어놓지 못한다. 안동 김 씨 문중에게 엉덩이 살점이 나가는 고초를 겪을 때도 당당히 목판본을 구하려 목숨을 건다. 말 그대로 지도에 미쳤다. 그랬기에 대동여지도라는 걸작을 탄생시켰고 우리나라 최고의 지도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일을 할 때 적당히 타협하고 중도에서 그만두면 어떤 위업도 달성할 수 없다. 나는 지금 무엇에 미쳐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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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유머 코드가 많다. 김정호 역할의 차승원의 술렁술렁하는 연기에 웃음이 묻어 나온다. 인기 프로그램 ‘삼시 세 끼’에 나오는 배우로서 영화 대사에 ‘나 삼시세끼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도 그 대사에서 엄청 웃었을 거 같다. 바우와의 케미도 쿵작이 잘 맞고 내비게이션 등에 대한 깨알 개그 장면도 있다. 시장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그 시대와 지금의 말투를 버무려 쓰고 있다. 책이나 영화에서 유머는 중요하다. 계속 진지하기만 하면 몸도 정신도 긴장 상태인데 한 번씩 웃음이 나오게 함으로써 완충시켜 주는 작용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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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권력을 앞세워 안동 김 씨 문증과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 든다. 아무리 재주와 재능이 많아도 권력 앞에서는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재주와 재능이 많아서 이리저리 이용되다 버려지기도 한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될 뻔했지만 결국 목판본을 그들에게 뺏기지 않고 바우에게 숨기게 하고 집을 불태운 채 다시 길을 떠나면서 엔딩을 맞이한다. 역사적으로 권력의 구도는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간다. 한 줌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죄 없는 민중을 희생시키고 역사를 전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퇴보시킨다. 그냥 그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놔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권력의 마성을 경계해야 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면, 그 힘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플라톤.


조선 팔도를 여러 번 돌았다 해도 지도 모양을 그렇게 정교하게 그릴 수 있을까? 낯선 곳에 가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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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古山字)라는 김정호의 호는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고 산에서 만난 선인이 지어줬다고 한다. 그의 호답게 산의 뿌리를 넘어 나라의 뿌리인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삶이 시대를 넘어 메아리로 돌아와 묵직함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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