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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사월과 오월사이

by 쥬디


하루에 세 계절이 들어있었다. 초록초록한 잎사귀들 사이로 싱그런 바람이 기분 좋은 봄날이었다가 그늘에서 벗어나 걷다 보면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쬔다. 더위에 화들짝 놀란다. 여름이다. 택시를 타니 기사가 지금 기온이 30도라고 한다. 오 마이갓. 4월 말 날씨가. 다행히 그늘에 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도 있다.


지인에게 전화가 온다. 어떤 사람이 지인에게 나에 대한 불평을 하더라는 말을 한다. 날씨처럼 갑자기 열이 확 오른다. 나한테 직접 이야기할 것이지 험담은 또 뭔가? 가뜩이나 나도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을 고르고 있는 중인데 다시 헝클어졌다. 아닌 척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람들 속으로 웃으며 돌아다닌다. 헝클어진 마음이 와해되거나 사라졌을까? 아니다. 그대로 남아있다.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새로운 사람 만나 움직인다. 그런데 이분 어째 하는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 방문할 집을 찾아가는데 혼잣말로 여긴가? 여긴가? 헤매고 있다. 자주 갔었다는 데 헷갈려한다. 머릿속이 더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길을 틀고 가자고 제안한다. 듣지도 않고 아니, 거의 다 왔다. 맞나? 하며 나를 끌고 다닌다. 헝클어짐에 번잡함까지 더 얹힌다.



볼일을 무사히 마치고 버스를 탄다. 힐링하러 치유소로 향한다. 뜨거운 곳에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 들어간다. 저녁 7시까지 운영해 5시 조금 안되어 들어가 아주 늦진 않았겠지 하며 두 개정도 이용하면서 몸을 따듯하게 하는데 남자 사장이 들어오더니 뭔가 바쁜 듯 움직인다. 다른 때 비해 늦게 온 나여서 형식적인 말로 나는

"아이고 오늘은 좀 늦게 오게 됐어요"

라고 했는데 남자 사장은 대뜸

"그러게요. 원주로 배달 가야 는데"

라고 말하며 진짜로 빨리 나갔으면 하는 말을 내뱉는다. 사정이 그렇구나. 생각이 들지만 나 돈 냈는데, 아직 시간이 있는 건데 등 내 권리를 생각하면 살짝 억울해 하나만 더 하겠다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두 개 반만 하고 나오게 되면서 아! 여길가나 저길 가나 오늘은 왜 이러냐!! 하는 생각이 따라온다. 건강 되찾는 장소를 알게 되고 건강박사 사장을 만나 이게 웬일이냐 러키다 했던 마음들이 스르르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실망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버스를 타러 간다. 다시는 안 갈까 보다 생각하며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지인한테 전화가 온다. 들뜬 목소리다. 자기 이야기 신나게 하고서는 자기가 갖고 잇던 치유소 표 5장 언제 쓸지 모르니 나에게 팔겠단다. 타이밍 죽이네. 나도 안 가게 될지 몰라라고 하니 그새 마음이 변했냐 가긴 갈 거잖냐 하면서 떠맡기다시피 돈 내고 가져가라 한다. 자기야말로 치유소를 마치 천국을 만난 거 마냥 예찬하고 다니더니 마음이 바뀌어 안 올 거 같아 나한테 파는 거면서. 이 변덕쟁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는다. 아! 변덕 변덕. 오늘 날씨도 변덕. 만나는 모든 인간들도 변덕. 내 마음도 변덕. 다 싫다. 실망스럽다. 사람이 싫은 날이다. 변덕과 싫음을 끌어당긴 날이었나.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웠다. 이불 밖은 할 일 투성이다. 아들 오면 줄 저녁밥도 해야 하고 청소 설거지 빨래 등등. 연락할 사람도 몇 명 있다. 멍 때리듯 누워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일어나 창문을 여니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둠이 내리고 숲에서 사월의 꽃내음을 담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오늘 오월의 첫날 비가 내린다. 비가 말을 건넨다.

‘오늘은 또 다른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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