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초록이 눈부신 6월인데 엄마 마음은 마치 낙엽이 뒹구는 11월같이 휑 하구나. 오늘 너를 군에 입대시키고 텅 빈 집에 들어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네 체취가 남아있는 방을 들여다보니 서러움이 더 커진다. 형을 한번 군대에 보내봤기에 이번에는 그다지 슬프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사실 네가 밤새 게임하고 운동도 안 해서 자세가 많이 안 좋아 군대 가는게 좋은 습관을 들일 기회다라고 생각해서 눈물이 안 날거 같았거든.
그래서 낮에 아빠랑 너랑 같이 증평 훈련소 들어갈 때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덤덤했었지. 너처럼 앳된 아들들이 2백 명 가까이 가족들에 둘러싸여 들어갈 때도 그냥 그랬어. 그런데 사단장이 입소식에서 부모와 가족들에게
“우리 아들 잘 키웠다, 우리 아들 잘할 수 있다”
라고 격려해 달라고 시킬 때 갑자기 울컥하더라. 그리고 5분만 시간 드릴 테니 아들과 인사 나누고 퇴장하라는 말을 듣고 너를 찾아 헤매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라. 너도 엄마와 아빠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지. 너를 와락 안으며 소리 내어 펑펑 울고 말았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눈물이 난다. 이 공간이 한없이 쓸쓸하다. 아들아 너는 말했지.
“아 왜 울어요? 난 잘할 수 있어요. 저 신경 안 쓰고 이제 글만 집중해서 쓰신다면서요? 잘 됐잖아요. 저는 그냥 1년 6개월간 큰 연극무대에 올랐다고 생각할 거예요.”
너는 엄마를 위로해 주고 방긋 웃었지. 우리 셋이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 눈시울 빨개진 게 그냥 나왔네. 엊그제 고모가 고모아들 군대 보낼 때 눈물 흘렸고 눈물 사진 찍은 걸 보여줬는데 엄마도 똑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구나. 지난주 너랑 싸워서 며칠 말도 안 한 거도 후회되네. 참 바보 같지? 엄마가. 이별이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늘 우리 막내가 옆에 있을 줄만 알았어. 지금 이 시간 우리 아들은 잠들었을까? 낮밤이 바뀌어서 잠이 제대로 오려나 모르겠구나. 어제 짧게 머리를 깎고 들어오는데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어. 엄마가 눈물이 터질까봐 계속 놀리기만 했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었어~~”
김민우가 불렀던 가요 ‘입영열차 안에서’가 바로 생각나더라. 두상이 이렇게 작았었나? 초등 3학년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 머리 다쳐 피 흘리는 너를 병원으로 데려갔더니 의사가 스테이플러로 상처를 집었던 부분에 머리카락이 안 나있는걸 까까머리가 되니 선명히 보여 과거가 스쳐 지나가더구나. 아들아, 21년이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생각되는구나.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너무 많이 싸우기도 했지.
네가 그랬지? 1년 6개월을 초단위로 따져봤다고. 오천팔백만 초만 참으면 된다고. 입대하기 전에는 6월 17일 만을 계속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대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으니 내년 12월을 생각해야겠구나. 그 시간 동안 엄마와 아들은 서로 약속했지? 엄마는 그동안 3권의 책을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했고, 아들은 체력을 키우고 군대에서 원하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그래 아들아 우리 멋지게 해 보는 거야. 어차피 시간은 갈 거고 우리는 현실에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잖아?
그래도 지금의 슬픔이 금방 날아갈 거 같진 않구나. 엄마는 세 권의 책 중에 한 권을 아들에게 매일 사랑편지를 쓰는 걸로 해서 내 볼 계획이야. 편지에는 그동안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도 들어갈 테고, 지금의 네 생활과 엄마의 도전등등이 쓰일 거 같아. 솔직히 고백하면 조금 특별한 아들을 키우느라 엄마가 마음고생이 많았어. 그 반면에 특별한 아들 덕분에 특별한 행복을 맛본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단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같아.
낮에 훈련소 입소식 가는 길에 네가 말했지. 2년 전 2500명 앞에서 피아노 연주 공연 때 심장 고동이 마치 천둥처럼 떨리는 속에서도 해냈으니 군대 생활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너 자신을 고무시키느라 그런 말 하는 거일 수 있지만 스스로 힘을 내보려고 애쓰는 네가 안쓰럽기도 대견하기도 했어. 아들아 사랑한다. 쓸쓸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매일 이렇게 편지 보낼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거 같아.
추위가 싫어 더위를 택해 군에 입대한 아들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올여름 너무 더우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