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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2

바닷가 소년에게

by 쥬디

어제 하도 울었더니 아침에 눈이 잘 안 떠지더라. 노안으로 침침한 눈이 더 침침해진 거 같아. 이제 눈물을 많이 흘리면 눈과 얼굴이 좀 불편함이 느껴지는 나이가 된 건가? 낮에 회합을 주최하면서 웃어야 되는데 얼굴표정의 이 어색함은 뭐라 말하기 힘들구나.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야.


아들아, 오늘 드디어 군대에서 첫 아침을 맞았는데 어땠는지 궁금하구나.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었네. 아주 한참 낯선 곳. 어제 훈련소 들어가는 길이 논밭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걸 보며 부대라는 게 실감이 나더라. 창문을 열었을 때 축사 냄새가 많이 나서 얼른 닫았는데 생각보다 축사가 많은 동네라 우리는 냄새 이야기를 했지. 도시는 공기가 좋진 않아도 그런 냄새는 없으니 아들은 도시가 더 좋다고 말했고.

엄마는 어제 새벽 4시도 안 되었는데 눈이 떠져서 한참을 뒤척였지. 그리고는 배가 쌀쌀 아팠어. 아들과 헤어질 걸 생각하니 무의식과 배가 먼저 작용했나 봐.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제목이 참 매력적이라 생각했고 영화도 재밌게 봤지만 사람은 헤어질 결심을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헤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 헤어짐에는 아쉬움 파장의 힘이 참으로 세다는 걸 느껴. 헤어짐과 만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어제 겨우 헤어졌지만 이제는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게 되는구나.


30년 전 너의 외할머니가 외삼촌들 군대 보낼 때 눈물 흘리는 걸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엄마도 그대로 재연하고 있고, 어쩌면 삼십 년 후 너도 그런 상황을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의 군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아빠도 아침에 전화해서는 네 생각 많이 났다고 하시더구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어제 사단장님의 말이 뇌리에 맴돌았어. 아들들을 훈련소에 데려다주는 부모님들의 표정이 아주 어둡고 안 좋다는 말을 했잖아?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믿고 맡겨달라고 말이야. 엄마도 표정이 좋을 수 없었지. 그런데 사단장 입장에서는 너와 같은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게 일인데 부모를 포함해 모두의 어두운 표정을 보면 마음이 썩 좋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모두가 입장이 다르겠구나 싶었어. 너도 미리 겁먹고 군대 관련 유튜브를 하도 많이 보면서 미리 부정의 말들을 쏟아내곤 했지. 너무 가기 싫어서 그렇구나 안쓰럽기도 하면서 너무 심한 모습을 보일 때는 그 정도는 아닐 수 있는데 듣기 싫기도 했단다. 엄마도 예전에는 미리 걱정하는 경우가 참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걱정하는 대부분이 쓸데없는 거었던걸 알고 거리를 두고 있어. 어릴 때부터 불안함이 많고 예민한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적응하면서 그런 걱정들을 떨궈버렸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아들과 어떤 추억의 한 페이지를 떠올려 볼까 하다가 십오 년 전 우리가 처음으로 인천에 와서 소래포구 근처 아파트에 정착했던 일이 생각나더라. 소래포구 시장 한 바퀴를 돈 적이 있었지. 포구 바로 옆 시장의 온갖 살아있는 물고기와 생선과 젓갈이 그득한 곳을 걸으며 너는 마구 인상을 찌푸리며 비린내가 난다며 소리 지르고 코를 막고 아우성쳤었지. 그랬던 네가 얼마 안 가서 그 짭조름하고 비린내 나는 바닷가를 좋아하고 그 길을 따라 자전거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가 산이 좋다고 하면 바다가 훨씬 더 좋다고 말하는 아들이 되었지. 소래포구 해넘이 다리를 건너 바닷가 주변 산책로에 야외 피아노가 있는 곳에 가서 추운데도 손을 호호 불며 피아노 치던 아들이었지. 아직도 엄마의 평행우주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앉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멋지게 피아노 치던 아들이 있단다.



오늘도 저녁에 집에 들어오는데 쓸쓸함이 엄습한다. 인천과 증평이 물리적인 거리는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양자장 안에 있고 엄마의 기원과 사랑은 우주 끝까지 닿는다는 걸 믿어.

오늘 하루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썼고 토요일 전화만을 손꼽아 기다릴게. 아들 좋은 꿈 꾸고 잘 자. 사랑해


2025.6.18. 둘째 날에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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