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세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문득 어린 시절 만화로 보며 충격받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가 떠올랐다. 유튜브에 올려진 KBS TV문학관의 백치 아다다를 찾아봤다. 자연 그대로의 시골을 보니 뜨거운 햇빛과 풀내음이 물씬 나는 거 같고, 밤에 들리던 소쩍새 소리도 그립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너무나 당연했던 자연 풍경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다시 본 아다다는 오래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충격이었다. 티브이문학관은 원작을 많이 각색하고 좀 더 스토리를 극적으로 애절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연기자들의 젊은 모습들이 보이고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놀랐다. 시골마을의 아다다와 주변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거 같다. 요즘 드라마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조금도 인위적이거나 과장되게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사람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각색한 티브이문학관 내용으로 세 가지를 생각해 봤다.
첫 번째는 그 당시와 현재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서다. 이 소설은 193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거의 백 년 전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백치 아다다에서 백치 뜻은 지능이 아주 낮은 상태의 사람으로 거기다 말은 ‘아다다’밖에 못 한다. 그래도 아다다가 타인의 말은 거의 알아듣는 편이다. 말을 못 해 자라면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받고 부모한테 무시당한 채 살다가 가난한 살림의 남자에게 땅을 몇 마지기 주면서까지 시집을 간다. 돈 없을 때는 사이좋게 살다가 남자가 구리광산으로 떼부자가 되면서 첩을 들이고 몰매 맞고 쫓겨나지만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 수룡과 살지만 그가 뼈 빠지게 일해 모은 돈으로 배를 사려고 한 큰돈을 보자 전남편이 돈 때문에 돌변한 게 생각난다. 아다다는 돈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다 돈을 태워버린다. 화가 난 남자가 따라와 홧김에 죽인다.
주체자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의 여성의 삶에 지적 장애까지 보태져 아다다에게 인권은 없다. 친정으로 다시 왔을 때 부모가 그냥 받아주고 살았으면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는 출가외인이고 다시 친정에 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귀신이 돼도 그쪽 집안에서 귀신이 되라는 시대에 여성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유튜브에 요즘 여자들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남자와 결혼하기 전 상견례에서 시어머니 될 사람이 무례한 한마디를 했다고 파혼했다는 사연이 올라와있다. 결혼해서 며느리가 시댁에서 한마디 들으면 열 마디 반박하거나 차단해 버리는 사연도 있다. 이혼율도 상당히 높아졌다. 불과 백 년 전과 지금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그런데 유튜브 여성들 이야기가 처음에는 사이다 같았지만 들을수록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 아다다같이 주체적이지 못하고 주체적일 수 없어 불행해지는 인생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오로지 세상의 중심은 나이기에 조금이라도 불리하고 불편해지면 차단해 버리고 타인과의 공감이나 배려 없이 사는 인생이어도 안 될 거 같다. 타인과 어우러지며 공감할 줄 알면서도 주체적이고 현명한 삶을 만들어가는 여성의 삶을 지향한다.
두 번째는 문학 속 캐릭터와 극적인 스토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 돌아가신 이어령 평론가는 이 작품이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고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뒤떨어진 캐릭터에-약자- 사람들은 연민을 갖고 더 애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다다가 말을 할 줄 알아서 ‘전남편이 돈을 많이 벌더니 나를 버렸어요. 그래서 돈이 무섭고 돈이 나를 불행하게 할거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절대 돈을 버리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만 하고 말은 할 수 없으니 행동으로 옮겨 오해를 사고 말았다. 이런 극적인 요소들이 소설과 드라마에 몰입하게 하고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두 번째 남편이 어렵게 모은 돈으로 배를 사고 아다다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하늘에도 오를 듯 기뻐할 때 아다다가 돈을 태워버린다. 마는 천계에 산다는 말이 문학이나 드라마에는 자주 등장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해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흥미를 극대화시키는 전개 방식이다.
세 번째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수렵채취하며 살던 자유로운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 살도록 유도한 건 한 줌의 밀이었다고 했다. 동양에서는 쌀이 그 역할을 한 건데 일 년 내내 고되게 농사 져야 겨우 먹고 산다. 노동이 전부였고 노동만이 정직하다고 믿는 시대를 이어왔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과 주변이 거의 그랬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오다 자본주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며 돈의 가치가 갑자기 커지게 되었다. 아다다의 남편은 돈벼락을 맞아 일을 그만두고 첩을 얻고 조강치처를 버린다. 돈으로 불행해진 경험이 있던 아다다가 돈을 태워버린 것도 이해되고 11살부터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돈이 타버린 거에 분노해 아다다를 죽인 수룡의 마음도 안타깝다. 결국 세 사람은 돈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돈 없으면 오히려 살아가기 힘들고 파탄 나는 시대임을 생각하면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돈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거의 중요성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돈이 주체가 아니고 사람이 그걸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는가가 중요해 보인다.
요즘 세대들에게 이 소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다가올 거 같다. 20세기를 거쳐온 나도 보는 내내 답답해 고구마 몇 개는 먹었으니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오래된 인습에 저항해 시대를 바꿔온 선구자들에게 감사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가져야 할 진정한 현명함과 지혜로움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도 남아있는 인간 개인의 마음을 억압하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인식을 떨쳐버리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누구에게 속박되고 좌지우지되는 자아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인생이어야 하겠다.
“행복이란 궁극적으로는, 다른 무엇에서 안이하게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실한 행복은 자기 생명의 내면에 구축하여, 생활에 또 사회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께다 다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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