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대학을 졸업했다.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며 대학을 합격해 꿈과 낭만을 즐겨보려는 마음도 무색하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대학 1학년을 꼼짝없이 비대면으로 생활해야만 했던 아들은 많이도 좌절했었다. 젊은 혈기는 멘털이 무너지고 답답한 울분을 자주 토해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안타까워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고민하다 어릴 때 배워 조금씩 치던 피아노를 좀 더 심화해서 배우기를 권유했다. 아들은 동네 피아노 학원에 마스크를 쓰며 다니기 시작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어느 날 지인을 통해 식당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마스크 쓰고 알바를 다니다가 딱 한번 대학 동기들과 대면으로 만나고 온 날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된 거에 흥분하고 즐거워했던걸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뿐, 그렇게 간절했던 여자친구는 사귀어 보지도 못하고 1년 학업을 비대면으로 마치고 다음 해 1월 군에 입대했다.
이 또한 비대면이라 부모는 훈련소 정문 앞에서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한 채 내려주기만 하고 헤어졌다. 들어가기 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한 까까머리 아들은 초조하고 긴장되고 견디기 힘든 얼굴로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해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린 겨울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라 외박도 휴가도 못 나오다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경북 영천으로 면회를 가서 아들을 보는 순간 겨우겨우 견디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꼭 안아주며 용기와 격려를 주고 돌아왔다. 아들은 군에서 코로나라는 세상, 군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좌우되지 않고 공부하고 책 읽는 동기와 선임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집에서는 거의 읽지 않았던 책을 펼쳐 들었고, 일본어 3급 자격증 공부를 해 휴가 나왔을 때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전역 후 아들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오자마자 모았던 돈으로 휴대폰을 바꾸고 연예인 콘서트에서 필요한 스텝알바를 시작하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학교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그에 응해 어떤 여학생이 만나자는 댓글을 올려 드디어 아들은 여자친구가 생겼다. 여태껏 내가 본 적 없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부지런히 만나러 다녔다.
틈틈이 여러 다양한 알바를 다니다가 2학년 복학할 때는 드디어 마스크를 벗는 때가 와서 진짜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멀어 기숙사를 들어갔다. 용돈을 번다고 학교 앞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다녔고 방학 때는 집에 와서 피자가게를 다니며 피자 만들기부터 모든 업무를 배워 직원처럼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좋아하는 옷을 사고 여행을 다녔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학업에 임했지만 열정 제로 교수의 강의에 실망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든 하지 않든 성적이 비슷하게 나오게 하는 이상한 시스템에 조금씩 학과 공부가 싫어졌다. 그러다 밴드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를 만나 전기공학과로 바꿀 결심을 한다. 3학년 때 전과를 하면서 생소하고 어려운 학업에 당황했지만 꾸준히 참을성 있게 공부에 전념했다. 1학기를 막 마치는 하루 전날 학교에서 휴대폰을 보며 걷다가 작은 구덩이에 발을 헛디뎌 오른쪽 발을 크게 다쳤다. 발의 중족골이라는 부분이 골절되어 핀을 박는 수술을 받고 방학 내내 집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젊은 혈기는 또다시 울분과 우울에 빠졌다.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보는 나도 안타깝고 힘든 시간이었다.
완전히 낫지 않은 다리로 3학년 2학기때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중간에 과를 바꿔 동기들과 어울리기 힘든 부분을 밴드동아리 활동으로 음악에 심취해 해소하며 다녔다. 써포터즈를 지원해 학교일도 관여해 장학금을 받아내고 3학년 겨울방학 때는 4학년 2학기때 다닐 인턴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몇 번을 낙방하다 한 기업에 합격했다. 4학년 1학기는 도서관 근로 알바로 힘들지 않게 용돈을 벌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베트남 해외봉사를 신청해 스스로 팀장이 되어 잊을 수 없는 대학생활 최고의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베트남 초등학교 교육봉사였는데 사진을 보내온 아들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에 넘친 모습이었다. 평상시 별로 웃지도 않고 뚜한 모습에 이런 얼굴이 숨어있었다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와 동시에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아들은 몇 주를 좌절과 괴로움으로 보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가고 8월부터 아들은 집에서 합격한 기업에 인턴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들이 매일 집에 들어오니 갑자기 일이 많아진 거 같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자취할 때 제대로 못해준 밥을 정성 들여 차려주었다.
아들은 일하고 운동하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회사라는 곳에서 업무를 배우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와 인간관계에 눈을 떴다. 보람도 실망도 느끼며 조금은 단조로운 생활이지만 다쳤던 다리 치료를 위해 재활피티도 받아가며 하루도 안 빠지고 운동을 해 통증을 최소화하며 자신의 생활을 만들어갔다. 그 와중에 전기기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해 매주 토일 8시간씩 공부를 하며 지난 2월 8일 1차 시험을 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며칠 전 파란만장했던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맞은 것이다. 앞으로 취업을 위해 여러 가지를 구상하며 준비 중이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헤치고 때론 더듬거리다가 때론 질주하며 여기까지 온 아들의 대학 생활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아들의 졸업을 통해 아들은 무엇을 졸업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단순히 대학만 졸업한 게 아닐 것이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벽에 좌절했던 마음을 졸업했다. 사랑의 상처도 졸업했다. 친구들과의 미묘한 인간관계로 의기소침했던 마음도 졸업했다. 다친 다리에 좌절하고 한탄하며 걱정 근심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약한 마음도 졸업했다. 사람들과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자신을 가두고 따라가기만 하는 마음도 졸업했다. 물론 앞으로도 넘어야 할 새로운 파도는 밀려올 것이다. 졸업했다고 완벽한 면역이 생겼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한번 맞아봤던 바람의 느낌이 어떤 건지 맛을 봤기에 덜 당황하고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는 매집은 생겼으리라.
아들은 이제 사회라는, 세계라는, 우주라는 더 큰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젊은 혈기가 마음껏 비상할 수 있게 나는 언제까지나 든든한 지원자로 기원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엄마이고 싶다.
#아들졸업 #추카추카 #응원해 #사랑해 #맷집 #가치장조 #이상을향해 #전진 #행복 #미래야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