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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un 30. 2024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크다. 시간이 지나면 스토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음악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다. 영화 ‘마지막 황제’가 그랬다. 1988년 모든 매체에서 대단한 영화라고 하길래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이며 만주국 황제로 즉위한 선통제 부의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급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가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영화였고 중국풍의 아련하고도 대국 다운 스케일이 느껴지는, 그러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가슴을 에이는 음악들이 영화 전편에 깔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그중에 음악상과 음향 효과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 황제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출연존 론, 조안 첸, 피터 오툴, 잉 루오쳉, 류이치 사카모토개봉 2015.02.26.


그러나 그때는 음악을 누가 담당했는지 관심이 없었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음악을 만든 사람이 류이치 사카모토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극 중 장면에서 부이의 두 번째 왕비가 지금의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비가 내리는데, 그때 나온 음악이 ‘rain’이다. 빗속에서 애절하고도 슬픈 운명을 음악이 절묘하게 표현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메인 테마도 거대한 나라가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아파하는 모습을 장대하고도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로 표현하고 있다. 음악을 만든 사카모토에 대해 궁금해지면서 그의 음악을 듣고 책을 찾아보았다. 그럴 즈음 군대에서 아들이 전역하는 날 광명역에서 데리고 오는데 사카모토의 레인을 트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너도 이 사람 알아?' 물으니 군대에서 자주 들었다는 것이다. 아들과 좋아하는 음악이 가끔 맞는 걸 보면 신기하다. 사카모토가 암 투병을 하다가 결국 작년 3월에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함께 슬퍼했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영화음악뿐 아니라 실험성 있는 음악, 가사 없는 밴드 음악 등을 만들어왔다. 그중에서 영화음악 위주의 곡을 좋아하다가 작년에 ‘아쿠아’라는 곡을 처음 듣고 완전히 빠졌다. 어찌 보면 느리고 처지는 곡이지만 제목이 아쿠아처럼 처음에는 빗방울이 한두 방울 후득 후득 내리다가 점점 더 큰 비가 되어 모든 세상을 수분으로 가득 채우는 기운이 느껴진다. 아련함에서 카타르시스로 가는 길이 보인다. 작은아들 입시로 스트레스받는 시기였는데 매일 밤 틀어놓고 자는 아쿠아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직접 피아노로 쳐 봐야겠다 싶어 열심히 연습해 쉬운 버전을 연주하게 되면서 더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1월 일본 영화 ‘괴물’을 보았는데 내용이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휘몰아치다가 아! 그런 거였구나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카모토의 ‘아쿠아’가 나와 깜짝 놀랐다. 내가 평상시에 생각했던 이미지와 거의 맞는 장면에 음악이 나왔다. 인간들이 이기적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타인을 괴물로 만들고, 자신도 점점 괴물처럼 되어가는 모습을 애처로워하며 쓰다듬어 주는 음악이었다. 마지막 화면에 ‘류이치 사카모토님을 기리며’라는 글이 나올 때는 눈물이 났다. 


          괴물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출연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타카하타 미츠키, 카쿠타 아키히로, 나카무라 시도, 다나카 유코개봉2023.11.29.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책을 읽으니 슬픔보다는 그의 여러 가지 면을 알게 되어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게 되는데 드뷔시의 곡을 듣고 자신이 그의 환생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도쿄예술대학에 들어갔지만 음악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미대 수업을 듣고 그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그 이유가 음악을 딱딱한 오선지 위에 악보 그대로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을 자유로움으로 인식했던 그는 그룹 YMO를 결성해 가사 없는 팝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여러 장르를 담은 음악을 했다. 그 와중에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출연과 동시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는 명곡을 작곡하고 얼마 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이탈리아 감독을 만나 ‘마지막 황제’에 아마카스라는 인물로 출연하면서 갑자기 음악까지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것도 일주일 만에 해달라는 걸 겨우 연장을 요청해서 이주 만에 44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베르톨루치는

 "중국이 무대지만 이건 유럽 영화 고, 전쟁의 격랑과 그 이전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현대 영화야, 그런 것을 보여줄 만한 음악을 만들어"


라는 주문을 했다. 사카모토는 서양풍의 오케스트라 음악에 중국적인 요소를 넉넉히 담고 파시즘의 대두가 느껴질 만한, 독일의 표현주의 요소가 들어간 음악, 그런 스타일을 머릿속에 그리며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음악을 공부한 적이 없던 그는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20가지 정도의 중국 음악 앤솔러지를 구입해 하루 종일 듣고 시대 상황을 고려해 들어가야 할 악기들을 선정하고 중국인 연주가를 찾아 곡을 쓰고 함께 녹음도 진행하고 일주일 내내 오케스트라 단원과 작업을 되풀이하며 날마다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하니 영화편집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어 다시 철야로 곡을 새로 쓰고 컴퓨터도 없는 방에서 계산기를 두들겨 가며 몇 소절과 박자를 빼는 계산을 하며 죽을 둥 살 둥 작업을 했다. 그런 작업 끝에 영원히 남을 만한 위대한 영화의 명곡이 탄생한 셈이다. 긴 시간이 주어진다고 명곡이 탄생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한정된 시간과의 사투에서 사카모토는 영혼 깊숙이 박힌 마지막 물까지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는 이후로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들었는데 9.11 테러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으며 인간의 마음과 사회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음악도 더 많이 만들어 낸다. 그린란드를 다녀오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한층 더 갖게 되고 그 마음을 담은 음악들을 만들었고 세계 투어를 이어 간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인공적으로 구축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의 맨해튼, 금융위기의 진원지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조작하거나 조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


라고 이야기를 끝맺었다. 에필로그에서는 자신이 받은 행운과 풍요의 시간에 감사해한다. 


 


그가 타계하기 전 병든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피아노 연주를 한 다큐영화 ‘오퍼스’를 보면 너무 마른 모습만이 눈에 들어온다. 평생에 걸쳐 많은 음악을 만드느라 몸을 혹사해 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음악이 그를 있게 했고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했으니 그는 책 제목처럼 ‘음악으로 자유로워진’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의 음악은 내 마음에서 언제나 몇 번이라도 재생되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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