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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Sep 21. 2024

숲은 언제나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인문학 모임

‘나의 첫 연인, 식물들은 내가 저들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저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감탄하며 가슴 설레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식물들이 어떻게 저만의 아름다움을 내 앞에 펼쳐놓겠는가. 내 눈을 통과해 들어와 내 속에서 수묵화처럼 다시 피어나는 풀들, 나의 첫 연인 식물들로 내 마음은 지금도 바람 부는 언덕처럼 설레고 있다.’ 

                                                         -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 최정희작가님-


이번 인문학 모임에서 함께 나눈 책은 ‘할수작가님(최정희작가님)’의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이었다. 숲 해설가이자 생태공예가인 작가님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사랑하고 관찰하고 자연이 걸어온 말들에 시선을 보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비 한 마리한테서도 그들의 사정을 알아채며 사유하고, 하늘하늘 차가운 이른 봄바람에 흔들리는 냉이꽃에서도 사랑을 발견한다. 대추 한 알에 번개와 천둥과 비바람을 견디고 단단해진 삶을 보고, 마당 한편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쇠비름에서 강인함을 찾아낸다. 사람들과 마차나 자동차가 지나는 길에도 꿋꿋이 자라는 질경이의 속사정도 살피며 독자들에게 그들의 비밀을 알려준다.      


낙타와 선인장이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혁명한 이야기는 눈물겹다. 얼마 전 감동적으로 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낙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얇아 보이는 긴 다리로 사람과 짐을 많이도 싣고 가고, 가다가 사람이 쉴 때는 그 뾰족한 두 등 뿔이 사람에게 그늘까지 마련해 주는 걸 보며 많은 걸 주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은 숲이 우리의 인생에 물리적인 혜택과 보이지 않는 철학을 끊임없이 보내주고 있는 것을 캐치하고 사유하고 글로서 승화시키고 있다. 감동과 힐링의 물결이 밀려온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태어날 때부터 주위는 온통 초록빛 자연이었다. 자연은 그냥 숨 쉬는 것처럼 늘 곁에 있는 존재였다.  오월의 향기로운 아카시아 바람을 마음껏 마시며 혼자 서있던 나. 마당에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낡은 돗자리를 깔고 여름날 뭉게구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나. 아이들과 늦은 가을날 마른 싸리나무들을 이용해 임시 집을 짓고 요새를 만들어 밤늦도록 그곳이 집인양 추울 때까지 놀았던 기억도 있다. 부모님이 과수원을 해 봄이면 일꾼이 되어 배봉지를 싸다가 무심코 바라본 과수원 가장자리 비탈길에 수줍게 피어있던 한 무더기의 은방울꽃들. 아이들과 가장 색다른 풀을 뜯어온 사람이 이기는 소풍 놀이를 즐겼던 나. 가을이면 메뚜기 잡으러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의 기억.     


이번 추석은 이제까지의 추석 중 가장 덥고 습했던 날씨로 기록될 것이다. 시원해야 할 시기가 30도를 넘어가니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거 같다. 어제까지도 습하다가 오늘 아침은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창문 밖으로 앞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자연이 그들과 하나였던 나를 끌어당겨 숲이 보이는 집으로 안내한 거 같다. 저마다의 사연과 삶의 방식으로 숲은 오늘도 살아갈 것이다. 나도 그들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며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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