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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Oct 20. 2024

어쩌다 춘천 첫날 1

일년보다 긴 하루

 지난 화요일 두 시 십칠 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실내에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문자로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나 뇌출혈이래 빨리 전화 줘’라는 문자가 왔다. 순간 온몸이 오싹했다. 협의 중인 곳을 빠져나와 복도에서 전화하니 남편이 받았다.

 “머리 아파서 병원 와서 시티 찍으니 큰 병원 가보라고 해서 이동 중이야. 빨리 좀 와줘.” 

“뭐? 진짜? 어떡해? 어느 병원이야?” 어리둥절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홍 차장과 같이 일하는 직원인데요. 사모님이시죠? 춘천 한림대학병원 가는 중인데 빨리 출발하셔야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티맵으로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안절부절못했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뇌출혈이라니. 어쩌다? 초조하고 당황스럽고 불안한 감정이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남편 목소리는 조금 놀란 거 같지만 어눌하거나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괜찮겠지! 큰 출혈은 아니겠지. 택시가 도착했다. 나와 남편은 주말 부부다. 집은 인천에 있고 남편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현장에서 일하며 숙소에 있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왔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오한이 심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병원을 가니 춘천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한 것이다. 인천에서 춘천까지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중간중간 길이 막혔다. 가는 도중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몇 명에게 병원 가는 중이고 기원해 달라고 연락했다. 위급한 순간 기원의 힘이 절실했다. 남편과 함께 있는 직원이 계속 전화를 했다. ‘병원에 도착했다. 너무 걱정 말고 와라. 얼마나 걸리냐’ 등등 곧이어 033 강원도 지역번호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남자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여보세요. 홍 00 씨 보호자시죠? 저는 응급실 의사인데요. 지금 환자 머리 시티 사진 찍어보니 뇌출혈입니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지주막하 뇌출혈’이고요”

안 좋은 예감이 몸을 휘감았다.

“지금 당장 수술해야는데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돼요.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아 네 아직 1시간 10분 정도 남았어요”

“아... 그럼 우선 급하니까 구두로라도 동의받을게요. 동의하시죠?”

“네네 그럼요”

“설명을 드리게요. 빨리 수술해야 돼서 짤막하게 드리는데 잘 들으세요. 뇌혈관이 터져서 수술해야 되는데 우선 뇌혈관 조영 검사를 시행해서 동맥류를 진단하고요. 머리뼈에 구멍을 내서 관을 넣어 혈종을 뽑아내는 수술을 하면 다행인데요. 만약 혈종의 크기가 크면 머리뼈를 절개해야 합니다. 뇌출혈은 아주 위험한 겁니다. 언어에 장애가 올 수도 있고 몸 어느 부분이 마비가 될 수도 있어요. 수술 후에도 예후가 아주 나쁠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런 거 보다 목숨이 중요하니까 우선 수술하는데 동의하시죠?”

너무 공포스럽고 무서운 말을 숨 가쁘게 내뱉는 의사의 말이 마치 연기하는 건가? 하며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런 뇌출혈은 10명 중에 5명은 죽는 아주 나쁜 경우예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말을 한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동의할 테니 수술해 주세요. 잘 좀 부탁드려요.”


점점 얼굴이 파래지고 굳어지는 내 표정을 살피며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택시 기사의 얼굴도 걱정스러워지면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말하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밖을 보니 아직 저녁도 아닌데 흐린 날씨에 첩첩산중 강원도 산들의 그림자가 어스름한 기운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내 마음과 같다. 수많은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주변 지인의 남편이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장애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장애인 센터를 다니고 있는 모습, 다른 지인은 남편이 쓰러져 평생 병원에 있어야 해서 전업주부에서 장애 딸을 두고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만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된 모습, 얼마 전 나와 동갑인 지인이 7년 동안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퍼하던 모습 등등.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도 올 수 있음에 몸서리가 쳐졌다. 엄습하는 불안한 생각들을 간신히 떨치내고 오로지 기원하면서 우선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야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 수술실 앞에 전화했던 직원이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났다. 


“오셨어요? 지금 조영술 하고 있어요. 많이 놀래셨죠?”

의사와는 다르게 나를 안심시켜 주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새파란 수술복을 입은 전공의가 나왔다.

“환자 보호자세요? 지금 조영술 해보니 다행히 두개골을 열지는 않아도 되고 관을 넣어 혈종을 뽑는 쪽으로 수술할 거예요”

“아 그래요. 네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젊은 의사에게 구십 도로 인사했다. 복도에 함께 남은 직원은 바로 가지 않고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고생하셨고 감사하다고 하며 내가 왔으니 가보시라고 했는데 직원은 차마 나만 혼자 두고 갈 수 없는지 같이 있겠다고 했다. 며칠 전 남편이 운동 후 혈압을 쟀는데 높다고 해서 약을 권유하니 버티고 있다고 했다는 둥, 숙소에 같이 있으면서  생활하는 걸 보니 음식을 너무 짜게 먹는다는 둥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다. 다 맞는 말이고 늘 걱정하던 거였고, 직원은 남편이 이렇게 된 원인을 생각하다가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왜 불안한 순간에 부정의 기운까지 더 겹치게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응급실 복도에 초조하게 혼자 앉아있는 것보다  그분이 남편과 같이 와주었고, 보호자인 내 옆에 있는 게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퀴 달린 들것에 급하게 환자가 실려 오고 가족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뛰어 들어오면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의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가 엘리베이터 옆에 벽을 치면서 울었다. 심각한 상황인거 같았다. 순간 마음이 더 움츠러지고 같은 공간에 슬픔이 퍼졌다. 눈물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남편이 수술받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택시 타고 오는 시간도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도 영원처럼 느껴졌다. 영원의 시간은 수술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끝났다. 얼굴과 파란색 옷가슴에 땀이 흥건한 채로 의사가 나왔다. 나와 직원은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수술은 잘 되었고요. 뇌에 물도 차 있어서 그 시술도 해야 합니다. 정리하는 대로 중환자실로 올라갈 거니까 거기서 대기하고 계세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게요.”

“아 네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연거푸 인사를 했다. 직원은 

“아이고 고비 넘겼네요. 됐어요. 됐어. 이제 크게 걱정할 일은 넘긴 거예요.”


중환자실로 올라가기 전 남편이 가지고 다니던 까만 작은 가방과 벗어놓은 옷가지를 넣은 봉지를 받아 들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하는 틈으로 커다란 서글픔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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