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남자 간호사가 전신마취에서 아직 깨지 않은 채 입에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남편을 침대에 눕혀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만감이 교차한다.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좀 전에 심각한 상황을 맞았던 환자의 가족들이 눈이 충혈된 채로 넋을 잃고 앉아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와서 그 가족들에게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라 한다. 아 병원은 이런 곳이었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나는 남편을 수술한 의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의사는 중환자실 컴퓨터 앞으로 오라고 하더니 천천히 설명했다.
'아까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고 양해를 구하고 막혀서 꽈리처럼 부풀어 있다가 터진 뇌혈관을 허벅지 쪽으로 관을 뚫어 시술을 했고 차있던 뇌척수액도 빼기 시작하면서 한고비 넘겼다고 하며 문제는 혈액이 너무 묽어도 안되고 그 반대가 되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관건이라 당분간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며 집중 치료 한다 했다'
세상에!
의술의 뛰어남에 놀랐다. 허벅지를 통해 뇌 쪽을 시술하다니!
감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의학용어를 섞어 말해 다 흡수하진 못했지만 대강 알아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정말 감사하다. 잘 부탁드린다 정도다. 처음 들어가 본 중환자실은 상당히 넓었고 침상에 갖가지 호스를 꼽은 수많은 환자들이 힘없이 누워있었고 젊은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취에서 깨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힘없이 두리번거리는 남편에게 수술 잘됐고 이제 마음 푹 놓으라고 말하고 나오는데 발길이 안 떨어진다. 직원은 그때까지 밖에서 대기하다 나에게 밥 꼭 챙겨 먹으라 신신당부하고 병원을 나갔다. 남편과 동갑내기로 친구로 지낸다 했다. 남편에게 저런 친구가 곁에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왠지 낯설다. 내가 모르던 세계다.
놀라움과 긴장의 연속을 지나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되고 있었다. 숙소부터 구해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춘천의 차가운 밤공기가 얇은 가을옷 속으로 파고든다. 몸을 움츠리고 가까운 모텔로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 키를 받고 문을 여는 순간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틀어막았다. 방안에 배인 담배 냄새와 오래되고 역한 퀴퀴한 냄새가 한꺼번에 얼굴을 공격했다. 눈까지 따갑다. 되돌아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돈도 냈고 몸도 지쳤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불빛은 희미하고 커튼은 두꺼운 회갈색천으로 지저분하고 화장실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나올 거 같다. 복잡한 마음이 심란함으로 바뀌었다.
계속해서 가족들과 회원들에게서 걱정과 안부의 전화가 걸려왔다. 문자도 여러 차례 왔다. 기원과 관심에 감사하며 일일이 상황 설명하는데 몸이 점점 지쳐갔다. 용기를 얻기도 하고 진이 빠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냄새가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는지 새삼 알았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죽을 사서 데워 먹고 마스크를 샀다. 그걸 쓰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이 다른 가족들에게 아빠의 상황을 알리고 기원하고 있다는 연락에 든든하고 힘이 났다. 다 컸구나. 큰애는 오겠다는 걸 좀 기다려보라 했다.
온 적도 없고 올 일도 없는 춘천에서 위급한 상황을 마주한 채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나! 밤에 응급실에서 전화 올지도 몰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감상에 빠진다. 왜 인간은 이런 순간 못 한 것만 떠오를까. 남편에게 무신경하고 못 한 것만 떠오른다. 감상이 나를 더 아래로 끌고 내려간다.
그래도 우선 다른 건 차치하고 고비를 넘긴 거에 감사하기로 했다. 의료파업 중인데도 실력 있는 의사가 마침 있었고, 직원이 동행해 주었고 시술도 잘되고 등등 우주가 도왔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그렇다 해도 방 안의 냄새는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의사감사합니다 #한림대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