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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Oct 22. 2024

어쩌다 춘천 둘째 날 1

나 홀로 춘천에서 살아가기

잠을 설쳤다. 냄새 고약한 모텔을 빠져나가려고 서둘렀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딱 한번 낮 12시 15분부터 30분까지 15분간이다. 우선 남편이 숙소에 둔 차를 가지러 갔다. 보통은 내가 쓰는데 일주일 전에 출장이 있다고 가져갔었다. 남편회사 직원과 아침 아홉 시에 홍천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홍천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가 차츰 밝아지며 강원도의 수려한 산들이 나타났다. 단풍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홍천터미널에서 직원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직원은 방향을 가리키며 저곳이 현장이다.라고 말하고 벚나무가  빨갛게 물들어있는 아담한 다리를 건너면서 여기를  숙소에서 걸어서 출근해요라고 말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 숙소에 도착했다. 방 3개 공간에 하나씩 쓰고 있다며 남편방을 데리고 갔다. 입원 시 필요한 수건이나 옷가지를 챙겨주었다. 남편이 혼자 일주일간 머무는 공간이 낯설다. 일요일 집을 나서면 홍천에서 잘 지내겠지 하고는 관심이 없었다. 짠한 마음이 올라온다. 직원이 생수 두 개를 가다가 마시라며 챙겨준다. 감사 인사를 하고 차를 몰아 춘천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이 갖고 다니던 크로스백에 나와 남편의 휴대폰과 지갑을 넣었다. 당분간 남편과 통화할 수도 없다.


일단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없으면 괜찮은 줄 알라고 간호사가 말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한 의사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말이 큰 충격으로 남았다. 청심원이라도 먹었어야는데.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도 면회시간 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남았다. 병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옆이 한림대학교가 있는 걸 발견했다. 들어서니 광장 한복판에  그리스로마 신화  요정들 분수와 거대한 다비드상이 하얀색으로 우뚝 서있다. 천천히 올라가다 첫 번째 건물 앞에서 멈췄다. 주황색 벽을 타고 초록잎이 살짝 섞인 강렬한 빨간 담쟁이들이 에워싼 모습이 예술이다. 자세히 보니 학교 건물들이 거의 담쟁이 옷을 입고 있다. 멋스럽다. 노란 은행나무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춘천에 와서 가을을 마주하는구나.


3층 중환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남편이 있는 응급중환자실까지 두 개의 중환자실이 더 있다. 그곳을 지나가다가 보호자들과 눈이 마주친다. 마스크를 대강 쓰고 충혈된 눈에 초조하고 지친 얼굴들이다. 순간 보이지 않는 무거운 기가 나를 압도한다. 고개를 떨구었다.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말자. 가뜩이나 무거운 마음에 무게를 늘리고 싶지 않다. 문 앞 접수대에 보호자이름과 동의를 체크하고 12시 15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환자가족 한 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외 가족들이 이야기라도 들으려고 잔뜩 모여있다. 이따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문이 열려 남편에게 가니 몸에 호스를 주렁주렁 매단 채 힘없이 누워 있다. 나는 손을 잡고 머리 아프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안타까워한다. 죽과 반찬 몇 개가 놓여있어 내가 떠먹여 주었다. 누운 채로 조금 먹다가 그만 달라한다. 평소 밥을 두 그릇씩 먹던 사람이다. 이마에는 동그란 파스 같은걸 아홉 개나 붙여놨다. 힘은 없지만 말도 평소와 같고 몸도 이상 없다. 그러나 며칠 동안 누워 지내야 한다. 나는 어제 그래도 일찍 발견해서 병원온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하고  이젠 아무 걱정 말고 회복만 하자고 말했다. 신경이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남편이  또 신경을 쓰면 위험할 거 같아 되풀이 말하며 진정시켰다. 몇 마디 안 했는데 간호사가 시간종료라고 나가라 한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고 발길을 돌린다.


일단은 얼굴을 봐서 안심이 됐다. 그제야 나도 배가 고팠다. 병원 앞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난 이제부터 어디 가서 무얼 하나? 가을햇살이 따갑게 뇌리 쬐고 있었다.


#한림대풍경 #회복중 #감사 #춘천의가을 #중환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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