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춘천 둘째 날 2
시부모님과의 급속 화해?!
남편의 얼굴을 보니 조금 안심도 되고 간밤에 잠을 설쳐 어디 가서 눕고 싶었다. 숙소를 미리 들어갈 수도 없고 문득 만화카페가 생각났다. 한 시간에 삼천오백 원만 주면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 만화책 보며 쉴 수 있는 곳이다. 만화카페에 도착하니 나밖에 없었다. 2층에 자리 잡고 누웠다. 스르르 잠이 왔다. 일단 깨끗하고 만화책 냄새가 좋다. 의사가 2주 이상 지켜보자고 말했는데 집도 멀고 앞으로 여기 있을 일이 까마득하다. 조금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여중생들이 몰려와 왁자지껄한다.
차가 있어 다행이다. 지나가다가 속옷가게가 보여 들어갔다. 외출한 상태로 와서 숙소에서 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양말을 몇 켤레 샀다. 세일 기간이라 저렴하게 구입했다. '여기 어때' 앱을 들어가 숙소를 검색했다. 깨끗해 보이는 방에 금연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잡았다. 관리가 철저한 곳이 길 바라며.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밝은 LED등에 깨끗한 침구 담배냄새 전혀 나지 않고 벽지는 은은한 수묵화로 멋스러운 기와집과 꽃들이 그려져 있는 방이었다. 나이스다.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 휴대폰으로 시부모님이 번갈아 전화했다. 남편은 부모님과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한다. 안 받으면 더 걱정하실 거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놀라실 텐데. 진퇴양난이다. 사실대로 이야기할밖에.
'여보세요'
아버님이 받는다.
'네가 웬일이냐?'
...
나와 시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좋았다가 지금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좋게 보면 관심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간섭이라 볼 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이셨다. 늘 공유하기를 바라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고 연락도 하루이틀 지나가면 자주 연락 안 한다고 서운해하셨다. 남편은 아들이라 이미 그런 생활이 익숙했지만 며느리인 나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적응하려 오랫동안 무지 애썼지만 결국 포기했다. 나는 그냥 나로 살기로 했다. 연락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가고 싶으면 갔다. 부모님에게 맞추는 건 더 이상 고문이다. 그러자 나에게 서운함을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다. 미워하려면 미워하라지. 그런 상태로 지내고 있던 찰나에 내가 전화하니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아버님 oo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어요'
아버님은 퉁명스럽다가 이내 놀라더니 점점 수글어들었다
'그래서 에미가 옆에 있는 거야?. 아이고 고생이 많구나. 고비는 넘겼다고? 잘 좀 보살펴줘라. 고생한다. 고맙다'
급 친절한 변화다. 무릎이 부은 어머니와 금요일에 아가씨 차 타고 오시겠다고 한다. 급속 화해모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병에 걸려 불행한 게 아니고 그 마음에 져서 불행해진다고 한다. 병은 얕봐서도 안되지만 겁내지도 말라했다.
남편은 병원 침상에서 나는 숙소에서 춘천의 둘째 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화해 #병에지지않는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