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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Oct 24. 2024

춘천에서 만난 김유정

어쩌다 춘천 번외 편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다. 춘천의 상강은 말뿐이 아니고 진짜 서리가 내릴 듯 추웠다. 일주일 전에 입고 온 얇은 재킷으로 버티고 있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안에 입는 조끼를 하나 사서 조금은 견딜만하다.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가기 전 어딘가 한 바퀴 돌고 싶었다. 혼자 지내니 조금은 답답하고 쓸쓸하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걱정하는 근심 어린 눈빛의 보호자들을 매일 만나게 되니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어디라도 가고 싶어 검색해 본다. ‘김유정문학촌’이 눈에 띈다. 그래 여기다. ‘동백꽃’과 ‘봄봄’의 작가 김유정을 만나러 가자! 다행히 차가 있으니 금방 갈 수 있다.      


숙소에서 15분 만에 도착했다. 차가운 가을비가 흩날리고 기온은 11도로 뚝 떨어졌다. 겨울 인가 싶은 칼바람이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김유정문학촌 주변에 불고 있었다. 흐린 하늘아래 마른 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흩어진다.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침 '실레마을'의 사계를 그린 이병도 화가의 어반스케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실레마을'이 뭐지? 했는데 작가 김유정 고향마을 이름이다. 실제로 살았던 마을에 김유정역, 생가, 그의 이름을 딴 식당, 카페, 공방등이 예쁘게 조성돼있었다. 화가의 어반스케치 그림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섬세하면서 서정적이고 정겨운 손짓을 한다. 마침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감상하는 내내 쯔룩쯔륵 신발소리와 걸레질 소리를 낸다. 금방 나가겠지 하는데 내가 다 볼 때까지 한다...

 

이렇게 메모를 남겼다.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건너편 김유정 생가와 기념전시관으로 향했다. 기념전시관은 나뿐이다. 아늑하고 따듯한 공간. 나와 백 년 전에 태어난 작가만이 존재한다. 

김유정은 1908년 2월에 춘천 실레마을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말더듬이에 횟배를 자주 앓으며 허약했던 김유정에게 아버지는 뱃속에 회충을 없애려고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우게 했다. 경악할 노릇이다. 결국 김유정이 골초가 되고 폐결핵을 앓는 단초가 되어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부모조차 일찍 세상을 떠나고 살림은 급속도로 기울었다. 고등보통학교 시절 소설가 안회남을 만나게 되고 두 문학 소년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을 탐독하며 꿈을 키운다. 명창 박녹주를 사랑하게 되지만 실연하고 고향에 내려가 농민들, 들병이들과 어울리며 기층민들의 삶을 목도하고 개인적 불행과 시대의 불운은 문학적 자양분이 되어 해학의 문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35년 ‘소낙비’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쉬지 않고 소설을 쓴다. ‘금 따는 콩밭’ ‘떡’ ‘만무방’ ‘봄. 봄’등 한 해 동안 열 편을 넘게 발표한다. 거의 한 달에 한 작품씩 탈고했다. 천재시인 이상을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정지용 등이 속한 ‘구인회’ 등에서도 활약한다. 그의 문학은 화려하게 피고 있었지만 이미 목숨은 이울어가고 있었다. 1937년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써 내려가던 그는 그 해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에피소드로 작가 이상이 같이 동반자살을 제의하자 앙상한 가슴을 풀어헤치며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라고 하며 ‘겸허’라는 두 글자를 머리맡에 붙이고 오로지 창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살고 또 살고 끝까지 살면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위트와 유머, 해학이 가득한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이토록 처절한 삶을 살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불우함을 해학으로 바꾸어 고단한 삶들을 어루만지고 싶었으리라.

 그의 생애와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차가운 바람만큼이나 스산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힘을 얻는다. 


'봄봄'에 나오는 주인공인 나와 점순이와 장인이 익살스러운 인형으로 만들어져 글과 함께 뜰에 만들어져 있다. 읽다 보면 쿡쿡 웃음이 난다. 이런 건 바람이 매서워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실레마을 뒤편 밭에는 빈 들깨나무들이 널려있다. 고소한 깨냄새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남은 김유정을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춘천의 가을을 감상한다. 공기가 깨끗해선지 나뭇잎들이 더 선명하고 곱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걸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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