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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Oct 26. 2024

어쩌다 춘천 넷째 날

고맙다 아들

 주룩주룩 가을비가 내렸다. 비구름이 춘천 시내를 둘러싼 산에 자연스레 척 걸쳐있다. 춥다. 시누이와 시부모님은 남편 면회시간이 바로 지나서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은 밥도 혼자 다 먹었다. 원래는 중환자실에서 휴대폰 사용이 안되지만 잠깐 남편과 부모님이 통화할 수 있게 연결했다. 목소리라도 들으면 안심할 거 같아서다. 걱정을 다른 사람보다 갑절하는 분들이다. 남편과 부모님은 서로를 걱정하는 통화를 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시댁식구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은 정이 많다. 아니 정이 철철 넘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정 때문에 상대를 부담스럽고 힘들게 한다. 내가 상대에게 정을 주는 만큼 받고 싶어 한다. 그만큼 받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상대를 아주 매정하게 대한다. 나는 어느 순간 그런 게 너무 부담스럽고 싫었다. 남편과 부모님 사이가 분명 정이 넘치는 건 맞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부분까지 연결되어 아주 끈끈하다. 부모님 목소리가 힘이 없거나 기분이 안 좋은 거 까지도 남편은 신경 쓰고 고민했다. 남편에게 부모님은 왠지 ‘상사님’ 개념인 듯했다. 나도 그렇게 부모님에게 대하길 바랐다. 우리 부부는 그런 걸로 다투었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내가 선을 그어버렸다. 남편이 중간에서 고민하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외면해 버렸다.     

 

나는 부담스러운 ‘정’의 세계에서 깊이 빠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했고, 부모님과 시누이는 서운해하는 모습으로 지내다가 이런 상황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공통으로 남편이자 아들이자 오빠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화해모드가 급 이뤄졌다. 시누이는 춘천에 왔으니 맛집 닭갈비집을 가자며 차를 몰았다. 사람이 가득한 식당에서 한가한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연신 안심시켜 드리는 쪽으로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남편뿐 아니라 나도 고생한다며 고맙고 미안해했다. 부모님과 시누이의 대화를 보면 한편으로는 참 다정하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식사를 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오른쪽 수술한 무릎이 퉁퉁 부었는데도 서울 구로동에서 아픈 걸 참고 사랑하는 아들이 걱정돼 오셨다. 3시쯤 헤어지는데 비가 많이 내려 걱정스러웠다.      


그다음은 춘천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오는 작은 아들을 마중 나갔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 한참을 기다렸다. 내 노트북과 옷가지를 챙겨서 대합실로 들어오는데 혼자 지내다 며칠 만에 보니 반가웠다. 저녁을 뭐 먹을래 하니 닭갈비라고 말한다. 점심도 그걸 먹었는데. 뭐 아들이 먹겠다면 가야지. 터미널 근처에 닭갈비 골목이 있었다. 아들은 혼자서 집안일을 잘하며 지내고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대견도 해라. 숙소에 도착해 인문학독서모임을 위해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지난주와 확연히 다르게 비친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얼굴은 속일 수 없나 보다. 작가님들의 내공 있는 이야기들에 힘을 얻는다. 며칠 동안 글을 못쓰고 있었다. 문제는 아들이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왔다. 이럴 수가! 오랜만에 아들과 담소를 나누며 잤다. 사람의 온기가 좋구나.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고맙다. 아들.


#정이많은시댁식구들 #든든한아들 #비내리는금요일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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