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백일장에서 남편을 이야기하다.
아들이 자다가 자꾸 말을 걸어 잠을 설쳤다.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났다. 아들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과제가 많아 집으로 간다 하고 나는 서울 숭실대에서 열리는 전국고전백일장 대회를 가기로 했다. 얼마 전 보낸 원고가 예선통과되어 본선을 치르러 오란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데 가는 건 어렵게 됐구나 생각하다가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어 토요일만 큰아들에게 면회를 가게 하고, 나는 용산 가는 ITX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좋은 기회를 날리는 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도 도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걱정하고 있는 큰아들에게 아빠를 만나게 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큰아들은 용인에서 춘천으로, 작은아들은 춘천에서 인천으로, 나는 춘천에서 서울로 각자 움직였다.
처음 타는 청춘열차라 어리바리한 채 일반 교통카드로 찍고 탔는데 구조가 특이했다. 기차처럼 좌석이 앞을 향한 곳과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 보는 좌석이 있고 계단으로 1,2층 나뉜 구간도 있었다. 두리번거리다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아있는데 역무원이 오더니 표검사를 하겠단다. 그제야 표를 따로 예매하는구나 싶었다. 인터넷으로 들어갔을 때 매진이라 떠서 일반석과 입석은 그냥 타는 건가? 하며 일단 타고 보자 했다. 역무원에게 자세히 물으니 지금 표를 끊으면 된다며 2층 좌석표를 주었다. 매진이라 했었는데 안타는 사람들 좌석이 남아있었나 보다. 현지에서 끊는 거라 훨씬 비쌌다. 아까워라. 어쨌든 상황정리되고 내 좌석에 가서 앉았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비가 갠후 아침 풍경은 신선하다. 강원도의 수려한 산들에서 경기도의 산들로 바뀌다가 터널을 몇 개 지나고 어느새 서울로 들어섰다.
숭실대 앞에 도착하니 거리에는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이 가득 떨어져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여러 건물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 전산관 1층으로 들어갔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책과 강연에 강연하러 왔다고 단톡방에 사진과 함께 많은 작가들이 호응을 보였던 ‘김을호’ 교수가 서 있었다. 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이라고 한다. 고등학생부터 군인 일반인까지 강의실에 가득 찼다. 김을호교수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몇 마디 던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이 많이 굳어져있음을 발견했다. 남편에 대한 걱정이 무거운 시계추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아들은 아빠를 잘 만나고 있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집중해 보자라며 자신과 싸우는 중이었다. 군인들이 많이 참여한 거에 놀랐다.
고전문학작품 하나를 나눠주며 읽고 독후감을 쓰라했다. ‘예덕선생 전’이 나왔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누가 쓴 건지 정확하게 모른다. 작자 이름도 안 쓰여있다. 글 내용 중에 이덕무가 나와서 그가 쓴 건가? 싶었지만 정확하지 않을걸 쓰면 낭패다. 내용은 인분을 나르는 엄항수의 마음이 곧고 덕이 높음을 그려 양반을 공박한 풍자소설이었다. 왠지 연암 박지원 글일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장이 수려하고 깊이가 있다. 나중에 나와 찾아보니 역시 박지원의 작품이었다. 인문학 독서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쓰다가 결국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남편 이야기가 써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는구나. 글은 속일 수 없구나.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블로그에 남편 이야기는 거의 쓴 적이 없다. 아니 쓸 소재도 별로 없었고 쓰고 싶지도 했다.
우리 부부는 성향도 성격도 너무 달라서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남편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결혼해서 초반에는 서로 맞추다가 각자의 스타일이 나오면서 신랄하게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다가 결혼에 대한 환상이 녹아 사라지고, 어느 순간 약간의 자포자기? 모드로 가면서 싸우는 거보다는 무심 혹은 어느 정도의 무관심? 모드가 낫겠다 싶어 가까이하기엔 조금 먼 당신?으로 지내왔다. 나는 친정언니들과 코드가 맞고 내 마음을 다 이야기해도 받아주어 그쪽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쫒았다. 남편과는 의리와 울타리 정도의 마음이 많았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며 쓸쓸하기도 안타까운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지만 뭐 할 수 없지. 안 맞아도 보통 안 맞아야지. 싸우는 거 보단 낫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안 삼고 정당화한 적이 많다. 그런데 남편이 병원에 누워있으니 수많은 상념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서로 맞지 않는 거 조차 내가 포용하고 뛰어넘었어야 하는구나. 무심함이 정답이 아니었구나. 진정한 가족은 포기가 아니고 포용이었어야 하는구나. 무관심이 이런 상황을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자책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원고를 제출하고 용산역으로 가면서 아들과 통화해 잘 만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춘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데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몰려왔다. 두 아들은 왔다가 자기 할 일 바쁘다 바로 가고 나는 춘천에 가도 남편과 같이 있지 않고 또 숙소를 알아보고 혼자 들어가야 한다. ‘우두커니’라는 말은 '외로이' 라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해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다들 바쁘겠지? 하는 생각에 선뜻 전화를 걸지 못했다. 아니 전화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아 할 수 없었다. 어둠과 함께 고독감이 춘천으로 가는 바깥 풍경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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