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문득 숙소 예약을 안 했다는 걸 떠올렸다. '여기 어때' 앱을 들어가니 이럴 수가! 방들이 다 매진으로 떴다. 아! 토요일이었지. 그것도 모르고 별생각이 없었다. 며칠 머물렀던 곳도 다 매진이었고 평일에 4만 원 조금 안되던 가격이 네 배 이상 올라있었다. 춘천은 서울과 가까워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는 걸 잊고 있었다. 찾다가 간신히 홍천에 남아있는 모텔을 찾아 얼른 예약했다.
남춘천역에서 주차해 놓은 곳까지 걸어가는데 차디찬 비바람이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빨리 숙소로 가서 좀 쉬자. 네비를 켜니 삼십 킬로 이상 가야 한다고 떠서 너무 먼데를 구했나? 싶었지만 얼른 서둘렀다. 그런데 가는 길 양쪽이 컴컴한 산이고 고갯길이었다. 여덟 시도 안 됐는데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가로등만이 띄엄띄엄 서 있다. 이제는 쓸쓸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내 앞에도 뒤에도 차가 없다. 나 홀로 춘천에서 홍천 가는 도로를 가고 있다. 어쩌다 차 한 대가 뒤에 나타났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 나를 충분히 앞지를 수 있는데도 똑같은 간격으로 따라오는 게 왠지 무서웠다. 그러다 고갯길에서 갑자기 사라지니 그건 그거대로 무서워졌다. 반대방향에서 오는 차가 없으니 거의 켤 일이 없는 상향등을 켰다. 그조차도 그다지 멀리 보이는 거 같지 않다. 아! 판단미스다. '여기 어때'만 믿지 말고 시내 곳곳 모텔에 전화해봤어야 하는데. 설마 하나도 없진 않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소용없다. 그냥 예약한 곳에 빨리 당도하는 수밖에.
작은 마을들을 스쳐갔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다. 불빛도 희미하다. 갑자기 산짐승이 도로로 뛰어들어오는 건 아닐까. 사람이 히치하이킹하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 하늘 구름 속에서 달이 나타나지는 않고 구름을 통해 빛을 보내는데,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기괴한 모습 같아 오싹했다. 달보고 무섭다는 생각은 처음이다. 네비는 계속 두시방향, 아홉 시 방향등 방향타령을 하다가 숙소에 거의 다다르자 6시 방향으로 가라 했다. 순간 작은 바늘 6 말고 큰바늘 12로 착각해 그대로 갔더니 갑자기 6킬로나 늘었다. 안돼! 가만있자, 음 6시면 그렇군! 다시 왔던 길로 거꾸로 가라는 거구나 싶어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턴해서 액셀을 밟았다. 순간 사람들이 도로에 몇 서있어서 깜짝 놀랐다.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놀라는구나. 산속 도로가에서 드디어 환하게 빛나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일단 휴~ 안심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작달막하고 억지웃음을 짓는 남자사장이 맞아주었다. 프런트 건너편에는 남자 몇 명이 당구를 치다가 내가 들어가자 갑자기 사장에게 이 근처 다방 있냐고 묻는다. 이건 또 뭐람. 예약했다고 하니 남자사장은 몇 명이냐 묻길래 혼자다 하니 ‘여자 혼자시라고요?’라고 묻는다. 여자 혼자면 안되나? 담배냄새 안나는 곳을 달라하니 생각하는 척하며 키를 내주어 올라가 방문을 열었는데 웬걸, 춘천에 첫날 들어갔던 숙소와 오버랩된다. 불은 거기보다는 환했지만 침대도 없는 온돌방에 화장실과 방안에서는 담배냄새와 여러 사람들이 다녀간 냄새가 섞인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청소는 한 건가. 이불은 빨은 건가. 아! 또 이런 곳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주변은 산속이다. 화장실 문에 곰팡이가 무늬처럼 피어있다. 대강 씻고 문과 창문 잠금을 여러 번 확인하고 저번처럼 마스크를 쓰고 누웠다. 지인이 괜찮냐고 문자가 왔다. ‘이상한 모텔로 왔어요. 너무 무서워요.’라고 보내니 기원해 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보냈다.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구나. 아휴 그러면서 혼자 해외여행 가겠다고 했으니. 강원도도 무서워하면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심란함을 끌어안은 채 마스크를 쓰고 시간아 제발 얼른 가다오 하며 눈을 붙였다.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을 떴다. 한시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지. 비가 그친 홍천의 산속은 깨끗함 그 자체였다. 추웠다. 기온이 11도다. 숙소를 나와 조금 달리니 비발디파크 간판이 보였다. 비발디파크 근처였구나. 아침 해와 홍천 산들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에 노랗게 물든 잎은 영락없이 칡덩굴잎이다. 선명하고 곱다. 단풍은 아직 해를 많이 보는 쪽 나무들만 들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간밤에 나를 괴롭히던 무서움과 냄새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홍천의 아름다운 아침경치를 보려고 나는 어젯밤 무서움을 참고 달려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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