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잊지 못할 가을
아침에 감사의 마음을 가득 안고 남편 면회 시간이 늦으면 안 되니 아들이 수업이 늦었다고 태워달라는 걸 미안하다 말하고 집을 나섰다. 자욱한 안개가 강원도를 향해 가면서 서서히 걷히고 연한 하늘에 단풍이 절정으로 향해가는 산들이 나타났다. 가평을 조금 앞두고 중환자실 전화번호가 떴다. 얼른 받아보니
“여보세요. 000 씨 보호자시죠? 오늘 교수님이 회진 오셔서 일반병실로 옮기라고 했어요. 지금 어디시죠?”
“네? 정말요? 이제 괜찮은 건가요? 일반병실로 진짜 가도 되는 건가요?‘”
나는 흥분해서 크게 되물었다. 퇴원하라는 말보다 더 반가웠다.
“지금 가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갑자기 바깥 풍경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안개가 걷히고 수려한 강원도의 산들이 화려하게 스쳐갔다. 오늘까지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지 딱 2주다. 의사말대로 2주가 걸렸다. 나 혼자 조급해서 북 치고 장구치고 했다. 이제는 병원이 싫지 않았다. 아침에 가졌던 감사의 마음이 기적을 일으켰나 보다. 우주가 내 마음을 들었나 보다. 전화는 두어 차례 더왔고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7층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는 나보다는 간병인이 케어하는 게 좋다고 해서 간병인까지 구해 일사천리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벌써 도착한 친절하고 싹싹해 보이는 간병인이 남편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다행이라고 말하며 다가갔다. 등 쪽에 주사를 이제 막 빼서 오늘은 절대 안정이라고 한다. 오늘까지 누워있어야 한다. 뭔가 불편하고 힘들고 짜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동안 정말 잘 버텼다. 차에 있는 물품과 없는 건 간병인과 함께 사서 전달했다. 간병인은 20년 이상 해온 베테랑이라고 한다. 남편이 고개를 들려고 하자 손사래 치며 못하게 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면회는 병실에서는 어렵고 환자가 엘리베이터로 나가면 가능하다고 한다.
집으로 올까 하다가 내일 하루 더 상태 보고 가려고 숙소를 예매했다. 남편회사 직원이 진단서를 떼 달라고 해 서류를 간호사실에 부탁해 놨다. 직원에게 일반병실 이야기하자 마치 제 일인 양 기뻐했다.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는 아버님에게 전화해 소식을 알리니 '아휴 살았다. 살았어.'라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분들이라 밥도 제대로 못 드셨을 거다. 주변사람들에게도 소식을 알리니 다들 다행이라고 기뻐해주었다.
아직은 병원에 더 있어야 하지만 이제 힘들지 않다.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2시가 지났다. 그제야 배가 고파왔다. 지난주 숙소 뒤에 있길래 가서 혼자 먹었던 옹심이가 생각났다. 착잡한 마음을 따듯한 음식이 달래주었었다. 오늘은 기쁘게 먹을 수 있다. 도착하니 맛집답게 기다려야 한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지난번에는 남겼지만 오늘은 하나도 남김없이 맛난 옹심이를 다 먹었다. 꿀맛이었다.
숙소는 7시에 입실이라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지난주 지인이 전화해 내가 춘천에 있다니까 있는 동안 가보라고 한 곳이 생각났다. 그때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 이상원미술관' 네비를 켜고 출발했다. 30분 정도 가야 한다고 나왔다. 이곳에 있는 동안 도시가 예쁘고 깨끗하고 아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오늘에서야 호반의 도시 춘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가는 길 내내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탄성을 질렀다. 깨끗한 호수들과 가까이부터 멀리까지, 붉게 불이 붙은 단풍산들이 몇 겹의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호수에 비친 빨간 단풍은 또 얼마나 예쁜지. 오후의 햇살과 산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직접 본 사람만이 안다. 가을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거대한 춘천자연미술관에 둘러싸인 채 핸들을 잡고 있었다. 거대한 춘천댐을 보고 크기에 놀랐다. 미술관은 산속 꼭대기에 있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 같다. 칡덩굴잎까지 빨간색으로 가을산을 수놓았다. 표를 끊고 올라가니 거대한 원형미술관이 나왔다. 이상원 화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주변 경치에 놀라고 그림들에 또 한 번 놀랐다. 한지 위에 수묵과 유화물감을 사용하는 직화기법을 개발해서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렸는데 인물의 피부, 머리칼, 표정등의 표현에 있어 독보적인 기량을 성취하게 되었고 극사실기법을 진행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노트
위대한 화가는 남다르다.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자연풍경도 미술작품을 보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색깔은 단풍처럼 선명한 색이다. 돌아오는 길도 경치에 연신 감탄한다. 가로수 샛노란 은행나무잎들이 노란 눈처럼 분분히 흩날린다. 가을은 추워지는 계절,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계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춘천에서 만난 이번 가을은 내가 좋아하는 봄보다 더 찬란한 빛으로 오래도록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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