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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Nov 03. 2024

하늘에서 내려다본 춘천

가을 왕국

병원에서 남편을 만난 후 숙소로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삼악산 케이블카를 타보기로 했다. 평일인데도 줄이 많이 늘어서 있었다. 활과 부메랑을 형상화한 춘천 삼악산 케이블카는 삼천동에서 의암호를 지나 삼악산을 연결하는 3.61km의 케이블카이다. 동반자들끼리 케이블카를 타게 데 나는 혼자라 어느 부부와 함께 탔다. 남자가 나에게 혼자냐고 묻는다.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듯한 가을 햇살이 통유리로 된 케이블카를 통과해 조금 더웠다. 호수 위를 지나 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경이로웠다. 의암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진갈색으로 온통 물들어 있었고, 호수는 가을 하늘빛을 담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붕어섬의 태양광 시설이 질서 정연하게 세워져 있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과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케이블카 안에는 하늘을 유영할 때 들으면 좋을 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도, 앞에 탄 부부도, 지나치는 케이블카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표정이 밝아진다.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즐겼다. 하늘과 땅 그 어디쯤에 나는 날고 있는 걸까. 아름다운 춘천의 산들에도, 이런 거대한 시설을 만든 인간들에도 감탄한다. 멀리 의암댐이 보였다. 삼악산에 도착하니 산 아래 호수 건너 춘천 시내가 훤히 눈에 들어온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각양각색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지리적으로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전망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표정이 다 밝다. 2주 이상 병원에서 마주친 사람들과는 다르다. 인생은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좋은 일만 있지도 않다. 한 권의 책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기쁨과 설렘의 장면이 있고 슬픔과 절망의 장면도 나온다. 그렇게 반복한다. 인생도 그렇다. 길모퉁이를 돌면 어떤 장면이 전개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어떤 장면이 나와도 인간은 멈칫할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 삶이 시작된 순간 살고 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을 짊어졌다.      


춘천에 와서 새삼 가을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계절임을 실감한다.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 가을왕국 속 이상원미술관, 소양강 주변 빨간 단풍이든 벚나무들, 그리고 삼악산에서 내려다본 자연 속에 감싸인 춘천의 풍광.  산책로를 걷다 보면 스카이워크 전망대도 나온다. 유리아래로 보이는 공간이 아찔하다. 가슴속 깊이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내려올 때는 나 혼자 탔다. 산과 호수 위에서 유유히 감상한다. 혼자가 된 기분. 이젠 쓸쓸하지 않다. 이곳에 있는 동안 혼자 무얼 하는 게 익숙해졌다. 따가운 가을 햇살이 좋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이 햇살이 그리워질 테니 만끽하고 싶다. 숙소에서 하루 묵고 다시 남편을 만나고 춘천에서 올 때는 미세먼지가 보였다. 춘천도 미세먼지는 어쩔 수 없구나 싶었지만 서울로 들어서고 인천으로 다가갈수록 그 농도와 색깔이 다른 걸 느꼈다. 지리도 더 많이 보이고 익히게 된다. 터널을 지나면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거대한 도시가 펼쳐진다. 시공간 여행자가 된듯하다. 장거리 택시 기사가 된 거 같기도. 요금은 못 받지만. 집에 와서 남편과 통화한다.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      


다음날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대출한 책을 오랫동안 반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서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라는 책을 읽었다. 60세 주인공이 30년 전의 자신과 만나 평생의 한으로 남은 사랑하는 여인을 보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금세 스토리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작가가 겨우 32세에 쓴 작품인데 사랑은 인생이 한참이나 남은 것처럼 느긋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는 깊은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로 환자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와 지금 내 상황에서 더 와닿는 부분이 많다. 작가들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 또 감탄할 뿐이다. 이런 상상의 질서를, 언어를 이용해 어찌 창조하는지. 나도 창조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내일은 또 남편을 만나러 서에서 동으로 달려간다. 깊어 가는 가을만큼 지혜로운 자신으로 물들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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