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와 대배우 이야기
이번주 독서모임에서 다룰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내용도 훌륭하고 문장 하나하나는 위대한 조각가가 섬세하고 세밀하게 빚은 예술품 같은 작품이다. 어떤 노력을 하면 이런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높은 벽에 부러우면서 경외의 마음으로 우러러보게 된다. 한참을 읽다가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이미 오래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해서 찾아보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 인생을 달관해 가슴 뭉클한 명언을 날리는 주인공 ‘조르바’의 역할을 명배우 ‘앤서니 퀸’이 맡았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인물과 거의 합치하는 인상이라 역시 감독이 배우를 보는 눈이 얼마나 예리한지 알 수 있었다.
기대했던 사투리 연주를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영혼을 불태우는 자유로운 춤과, 여자들에게 끈끈하게 달라붙는 모습, 건들대면서 명언을 날리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조르바를 아주 많이 닮았다. 조르바의 역할을 한 ‘앤서니 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름부터 고전영화를 찾아보면서 고전 배우들의 연기, 영화의 시대상, 깊이 있는 내용을 찬찬히 관찰하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먼저 1957년 이탈리아 영화 ‘길’에서 앤서니 퀸은 ‘잠파노’ 역을 연기했다. 떠돌이 차력사로 순진한 여인 ‘젤소미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길 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젤소미나’에도 연민을 느꼈지만 무뚝뚝하면서 짐승남 같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채 살아가는 잠파노의 모습은 후유증으로 남았다. 앤서니퀸과 잠파노는 같은 인물 그 이상이다. 걸걸한 목소리와 맨가슴에 쇠사슬을 묶고 끊어내는 장면은 언제 봐도 짜릿하다. 젤소미나가 죽은 걸 알고 바닷가에 쓰러져 통곡하는 장면에서 건장하고 망나니 같은 남자의 슬픔은 훨씬 크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내 인생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1962년) 앤서니 퀸은 아라비아의 족장 ‘오다 아부타이’ 역을 맡았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모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쓰는 터번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뛰어들어 무지막지하게 싸우는 모습은 이미 사막의 족장이다. 로렌스를 도와 사막의 도시에 입성해 금을 기대했는데 현금 뭉치밖에 없자 웬 종이조가리만 있냐며 사방팔방으로 뿌려대며 버리는 모습은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세 번째는 1964년 ‘그리스인 조르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영화 시간상 조르바의 영혼과 정신세계가 더 많이 연출되지 않은 점은 살짝 아쉬움으로 남는다. 흑백영화라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풍광을 볼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고향인 그리스가 배경이지만, 크레타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는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주민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이 마녀사냥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섬뜩하기도 하다. 유발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대로 고립된 사회의 지역공동체에서는 작정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묵인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그 속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해 온 조르바가 절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은 멋있었다.
주인공 화자가 조르바가 어떤 터키인이 가르침을 준 것을 언급하자 전쟁을 치른 터키 사람 말을 믿는 거냐? 하고 묻는다. 그러자 조르바는
“터키와 전쟁하면서 난 예전에 그리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터키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여자를 겁탈했죠. 왜? 그저 터키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런데 그 후로는 국가를 따지며 사람을 보려고 안 해요. 선악으로 판단하려들죠. 아니, 이젠 선악도 안 따져요. 따지면 뭐해요? 죽으면 다 똑같은데”
풍파를 겪으며 인간애를 터득한 조르바의 명언이다.
네 번째는 1967년 프랑스, 이탈리아 합작영화 ‘25시’에서 앤서니퀸은 주인공 ‘요한’ 역을 맡았다. 루마니아 소설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그는 ‘신의 구원이 끝난 절망적인 시간’을 25시로 표현했다. 독일에서 유대인 색출 명령으로 유대인도 아닌데 억울하게 유대인으로 지목된 주인공 요한은 끌려간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서류를 꾸준히 제출해 인정받게 되지만 아내에게 이혼요구서를 받게 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이번에는 거꾸로 유대인이 아니어서 따돌림받게 되고, 미국으로 수속이 진행되는데 거기선 유대인이 아니라 못 가게 된다. 그 후에도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고 생고생만 하다가 100군데가 넘는 수용소를 거쳐 13년 만에 가족을 만난다.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 데리고 온 걸 인정하며, 기막힌 슬픔과 회한으로 기자가 사진을 찍겠다며 억지웃음을 지으라는 요구로 웃는 건 지 우는 건 지 모를 표정으로 사진 찍으며 막이 내린다. 이 또한 영화사에 명장면으로 남았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사연의 주인공을 완벽하게 연기한 앤서니 퀸은 이미 요한이었다.
책을 통해 영화를, 영화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통해 책의 리얼함을 맛보는 감동은 그야말로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여러 가지 음식 맛을 보는 것과 같다. 검색해보니 앤서니 퀸이 미남과는 거리가 멀지만 큰 키에 탄탄한 체격과 국적을 알기 어려운 개성 있는 외모로 이탈리아안, 그리스인, 북아프리카인, 이누이트, 유대인, 독일인, 아메리카원주민 등 여러 민족의 강인한 인물의 역할을 해왔다고 쓰여있다. 정작 그는 남미의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세계인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 속 인물로 파란만장한 삶을 연기한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두 번이나 탄 명배우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어 천의 얼굴을 가진 그를 만나는 작품여행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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