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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Nov 11. 2024

마음으로 들리는 세상

영화 '코다'를 감상하고

아침 6시 휴대폰 자명종 소리에 깬다.

경쾌한 음악을 튼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버튼을 누른다.

환기하러 창문을 열면 멀리 큰 길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누군가의, 무언가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소리는 자기 전까지 내내 이어진다. 듣고 싶은, 혹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귀가 열려있는 한 계속 이어진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 임종 시 가장 늦게 닫히는 것도 청각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노트북 자판기 소리,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 멀리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만약 소리가 사라진다면?     


영화 ‘코다’를 보면서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을 봤다. 2021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이다. 주인공 루비의 아빠, 엄마, 오빠는 청각장애인이다. 루비만이 들을 수 있다.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위해 루비는 그들을 세상과 연결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춘기 고등학생이다. 가족은 배를 타고 고기 잡는 일을 한다. 청각장애인들끼리만 배를 타는 건 위험하니 루비가 항상 동행하고 일을 돕는다. 가족은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끈끈한 유대로 맺어져 있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간다. 거기서 노래를 잘하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면서 버클리 음대를 목표로 도전하게 된다. 들리는 루비와 그렇지 않은 가족 간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루비는 아직 감수성 풍부한 소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가족의 상황이 너무 일찍부터 그녀를 어른처럼 살게 했다.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를 매 순간 오간다. 그저 인정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평범한 사춘기소녀로 살아갈수 없는 현실속에서 갈등한다. 엄마는 언제까지 루비를 어린애처럼 생각하고 옆에 머물러 가족을 돕기만을 바란다.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며 발버둥 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루비. 


그러나 합창대회에서 아빠는 깨닫는다. 들리지 않는 가족을 늘 대변해 주는 어린 딸이 무대에 서서 당당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딸이 들리는 세계에도 속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이때 감독은 이삼 분간 모든 소음을 제거했다. 노래 부르는 딸의 목소리, 사람들의 반응과 박수. 이리저리 침묵 속에 쳐다보며 아빠가 생각하게 되는 장면에서 잠깐이지만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들은 이런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아빠는 가족을 위한 욕심을 내려놓고 딸의 세계를 응원하기로 한다. 루비는 노래로 대학 실기 오디션을 본다. 그때 가족이 관객석 2층으로 몰래 들어온다. 루비는 가족을 위해 수화를 곁들여 노래한다. 이때 부른 곡이 유명한 명곡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이다. 루비의 수화에 행복해하는 가족들. 가족은 얼마든지 마음으로 서로간에 사랑의 소리를 듣는다. 루비의 따듯한 마음과 아름다운 멜로디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가족 간의 따듯한 사랑은 들리지 않는 세계도 초월한다. 노래와 수화 속에 담긴 사랑은 감동으로 흘러넘친다. 코다라는 뜻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의 자녀를 뜻한다.  농인 부모에게 농문화와 수화언어를 습득하고, 청인 중심 사회에서는 청문화와 음성언어를 접하며 성장한다. 루비가 코다에 해당한다. 어린 그녀가 감당할 무게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은 눈빛으로, 포옹을 통한 온기로 서로의 마음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로 소통이 안될 때는 침묵으로 일관한 적도 있다. 침묵이 때로는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고 분란만 일으키는 소리보다 훨씬 좋을 때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답답해서 침묵을 깬다. 견디기 쉽지 않다. 어떤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어떤 소리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들을 수 있어 말하게 된다. 소리는 감정을 파고들기에 감성적인 음악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도, 힘찬 음악소리가 마음을 고무하기도 한다.    

 

어제 길을 걷고 있는데 부스스 떨어지는 갈색 나뭇잎 중 하나가 왼 손가락 사이로 저절로 들어왔다. 얼른 움켜쥐고 손바닥에 나뭇잎을 올려놓고 쳐다본다. 바싹 마른 잎이다. 너는 땅으로 떨어지기 아쉬워 나에게 왔니? 내 손안에 들어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온다. 가을이 지나가는 소리,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 내가 인생을 걸어가는 소리. 이 세상은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소리로 가득하다. 가장 가까운 소리는 마음의 소리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소리를 내고 듣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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