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쥬디 May 19. 2024

지우개 소녀

(소녀의 어린시절 에피소드 1)

  소녀는 호기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산수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도 작고 수업 내용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지루하고 심심해 하던 찰나 사각형 모양의 작은 분홍색 지우개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지우개를 이리 저리 살펴봤다. 그리고 갑자기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지우개 그러고 보니 딱 콧구멍 크기네. 과연 콧구멍보다 클까 작을까 한번 재볼까?’

엉뚱한 소녀의 손은 이미 생각과 동시에 지우개 잡은 손을 콧구멍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아 딱 맞네’

소녀는 확인했으니 이제 빼려는 순간 아뿔싸! 코에 살짝 콧물이 있어 그만 미끄러져 더 들어가고 말았다. 

“헉. 흥흥”

소녀는 당황했다. 소리가 나자 애들이 쳐다봤다. 소녀는 창피해서 콧속에 있는 지우개를 빨리 빼려 했는데 더 빨려 들어가 코 안 깊숙이 박혀버렸다. 

“아. 어떡해. 안 빠져”

소녀는 울상이 되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얘가요. 지우개가 코에 들어갔대요” 

짝꿍이 말해주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무슨 장난하냐는 식으로 쳐다보다가 소녀가 킁킁 거리는 걸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선생님은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오고 교실은 금방 웅성웅성해졌다.

“코를 쎄개 흥 해봐 응?”

선생님은 소녀에게 말했다.

“흥. 흥. 칫”

코 푸는 소리를 여러 번 내도 지우개는 요지부동이었다. 소녀의 얼굴은 점점 빨갛게 변했다.

“안 되겠다. 얼른 집에 가라.”

그리고 학교에서 일 하는 아저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아저씨. 이 아이 자전거 태워서 얼른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코에 지우개가 들어갔거든요”     

소녀는 이렇게 해서 코에 지우개가 박혀 울상인 채로 수의 아저씨 자전거 뒤에 탄 채로 집으로 달려갔다. 소녀는 겁이 났다. 이게 영원히 안 빠지면 어떡하지? 코 속으로 넘어가 입을 지나 몸속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를 상상하니 너무 무서웠다. 집에 오니 할머니가 혼자 마루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놀라 어찌할 줄 몰랐다.      

소녀가 집에 와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있는 힘껏 코를 킁킁 거리며 지우개를 빼내는 거밖에 없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그래도 지우개는 나와주지 않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활짝 열어 젖힌 대문으로 소녀의 엄마가 열무를 가득 담은 큰 다라를 이고 들어왔다. 

“아줌니. 얘 코에 지우개 들어가서 학교에서 데리고 왔어요.”

“콰당”

소녀의 엄마는 이고 있던 다라를 훌라당 던지고 달려왔다. 새파란 열무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아니. 이게 왠 일이여. 빨리 흥해봐 응?”

역시 엄마도 할 수 있는 건 걱정스런 얼굴과 이 말뿐이었다. 그때 밖으로 나갔던 할머니가 누군가와 같이 들어왔다. 동네 이장을 맡고 있던 옆집 아저씨다. 소녀 옆에 앉더니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 집으로 데리고 올 게 아니라”

라고 점잖게 말했다. 모두들 ‘흥 흥’해봐 라고 하는데 역시 이장은 달랐다. 소녀는 그 순간 생각했다.

 '병원을 가야하는구나. 근데 너무 가기 싫어. 병원은 무서워. 에잇 흥~~~~~~~~~~~ '

소녀는 온 힘을 다해 한 손으로 지우개 들어가지 않은 코를 막고 힘을 콱 주었다. 그 순간

“휙”

“나왔다. 지우개 빠졌다.”

코 속에 있던 지우개가 마당에 떨어졌다. 어른들은 그제야 안심했다. 소녀는 지우개가 빠진 것도 다행이지만 병원을 안 가게 되어 더 안심했다. 열 살 소녀가 십년감수했다. 이 사건 이후로 한동안 소녀는 아이들 틈에서 ‘지우개 소녀’로 불렸다.               


#지우개소녀 #책과강연

작가의 이전글 쇼펜하워, 니체, 바그너, 고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