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요
한 달 여 전부터 나는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별’이란 말은 어릴 때 초등학교 졸업식에 눈물 콧물 흘리며 노래하던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에서만 들어본 말이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그 말을 아주 오랜만에 들어 봤다. 보통은 ‘이별’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듣는다. 그런데 ‘작별’과 ‘이별’과 ‘석별’의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 ‘작별’은 상대방과 만남과 헤어지는 상황을 가리키고 다시 만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별’은 관계의 종료이고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의미한다. ‘석별’은 애틋한 이별을 말한다고 한다. 즉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헤어짐은 ‘작별’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7년 동안 나는 한 조직을 맡아 장으로 봉사하며 책임을 맡아왔다. 신념을 같이 하는 그분들과 울고 웃으며 희로애락을 나누고 때로는 가족보다 더 애틋하고 더 자주 만나며 지내왔다. 며칠 안 보면 엄청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었고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공감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격려해 주었다. 허물없이 친해지다 보니 오해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피할 수 없으니 내가 한층 더 마음의 크기를 넓히려 애쓰며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거 같다. 그러는 사이 배려가 몸에 배고 배려받는 거보다 배려하는 쪽에 서는 사람이 되어갔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는 값진 시간들이었다. 기쁜 일에는 더 기뻐해주고 슬픈 일에는 함께 슬픔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해가 이글이글거리는 용광로 같은 길도, 한풍에 온몸을 움츠리는 길도 하하 호호 걸으며 금생 인계의 추억을 쌓았다.
7년을 날로 환산해 보면 2555일이다. 이 값진 날들을 함께 보낸 분들과 이별이 아닌 ‘작별’을 하고 이제 다른 분들을 만나야 되는 시점을 맞았다.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제 이분들과의 유통기한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어제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이번 일요일이 되면 공식으로 말해야 한다. 어젯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인사와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는 그분들에게 나도 겉으로는 똑같이 대했지만 문득문득 아쉬움과 섭섭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성실하고 우직하고 상냥하고 밝고 늘 목표를 향해 전진하며 살아가는 훌륭한 분들이다. 세간적인 명예나 부의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살아가는 분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7년 동안 여러 풍파를 겪어왔다. 나와 가족이 병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고 인간관계로 몸부림치며 애태우고 괴로워하는 폭풍우 한복판에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려 봤다. 그래도 그분들과 함께하는 속에 하나하나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의연한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혼자 가는 길은 아무리 강해도 쓸쓸하다. 벗이 있기에 그리고 스승이 있기에 인간은 강해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내가 다른 소속으로 가도 그분들과 언제든 회관이나 다른 장소에서 만날 수 있으니 ‘이별’이 아니고 ‘작별’이다.
아이러니하게 오늘과 내일 시상식에 참여한다. 인천 새얼백일장과 전국 고전백일장에서 각각 상을 받게 되었다. 마치 그동안 소속에서 수고했다는 상을 받는 기분이다. 어제의 모임을 마무리하고 오늘과 내일 상을 받고 일요일 공식으로 헤어진다. 마치 각본을 짜놓은 거처럼. 인생은 내가 쓰는 각본이다. 내가 이렇게 써놓은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이제 새로운 분들과 만나 새로운 각본을 쓰면서 더 넓고 큰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이 말한 대로 다음 주부터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기대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본다. 인생은 걱정만 하기엔 너무나 즐겁고 호기심 많은 일들이 가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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