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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May 20. 2024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

(호프맨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 4차시)

 하얀 아카시아와 이팝나무의 달콤한 향이 가득한 오월이다. 오늘 호프맨 작가님의 4차시 인문학 강의의 주인공은 서양 고전문학의 최고 거인들인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였다.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와 그분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떠도는 이야기나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오늘 강의를 통해 그들과 작품에 대해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작품이 있었기에 저 유명한 단테의 신곡도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호메로스는 시각장애인 음유시인이었고 ‘일리아드 오디세이’도 문자가 아닌 말로 지어 전해진 구승시라고 한다. 일리아드는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으로 트로이전쟁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주인공으로 트로이전쟁 그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에게 수많은 상상력과 전설을 낳은 이야기가 기원전 8세기 전이라니, 얼마나 오랜 세월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우선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아 재창조한 사람은 기원전 70년에서 기원전 19년까지 살았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의뢰를 받아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 신화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아이네아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아이네이드’이다.      


그리스 군에 의해 멸망당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방랑을 하다 카르타고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지지만 제2의 트로이를 세우는 대의를 위해, 여왕을 버리고 라티움 땅에 로마제국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는 서사시이다. 이 두 위대한 작가는 또다시 천년이 훨씬 지나 13세기에 탄생한 단테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어 ‘신곡’을 탄생하게 했다. 신곡은 신이 중심이던 중세 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단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정치를 하던 중, 패퇴하여 망명을 떠나게 된다. 빛을 잃었던 20여 년 동안의 망명생활에서 단테는 불후의 명작을 썼다. 올바른 시각과 앞선 생각으로 민중을 위해 살았던 위인들은 당대에서는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도 그랬고 우리나라 정약용 선생도 그랬다. 고향을 떠나 쓸쓸함과 괴로움에 빠졌던 단테를 구원한 사람은 ‘베르길리우스’ 시인과 일생에 단 두 번밖에 만난 적 없는 여인 ‘베아트리체’였다. 그 둘은 이미 세상에 없지만 신곡에서 방랑하는 단테를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으로 길을 안내하는 스승이고 연인이 되어주었다. 여기서 단테의 강인함을 볼 수 있다. 누군가 스승이 되어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 스승을 정하고 구도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만난 ‘신곡’은 엄청 두껍고 세로로 읽게 되어있어서 어려웠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거의 잊었지만 천국과 지옥 중간에 연옥이라는 개념이 신선했고, 성직자의 탈을 쓴 타락한 교황들을 지옥에서 고통받게 하는 장면은 놀라움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기독교사회이고 교황의 절대적 권위를 생각하면 이런 글을 쓴다는 게 목숨까지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미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단테로서는 두려움 따위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일생에 단 두 번밖에 만난 적 없는 ‘베아트리체’를 영원의 연인으로 삼은 건 정말 낭만적이다.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자신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고귀한 혼을 가진 연인이라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사람의 인연은 자주 만나야만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한 번을 만나더라도 얼마든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걸 확인했다. 아니, 만나지 않더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옥 제9 고리에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와, 카이사르를 배신한 ‘부르투스’를 집어넣은 걸 보면 단테가 생각하는 가장 큰 죄는 보은을 저버린 망은인 거 같다. 신곡의 마지막 구절에서 기독교인이었던 단테이지만 ‘해와 별은 사랑을 통해 새롭게 움직이고 있노라’라고 하는 부분은 인간중심인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된 상징적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단테는 ‘사랑의 힘’으로 살았고 작품을 썼다. 단테의 신곡은 화가 블레이크, 조각가 로뎅, 수많은 작가, 음악가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호프맨 작가님은 지난주에 이어 인문학 작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융합, 통합, 통섭의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하나의 종교나 사상에 매몰돼서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연한 사고로 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전은 수 백 년이 지나도 살아남은 책이라고 한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도 보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울림을 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리라.      


고전을 펼치면 수 백 년 혹은 그 이전의 사람들과 시공을 초월해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비슷한 고민을 했고 살아가기 위해 활로를 개척하고 몸부림쳤음을 알게 된다. 신화와 전설로 화려하게 꾸며도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진리의 보편성은 깊은 공감을 낳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위대한 인문학 시인들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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