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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May 21. 2024

돌 밥 나르기                   

(소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3)

바쁜 농번기에 아빠와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논에 나가서 일하고 할머니는 부지런히 점심을 만들었다. 빨간 다라이에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담고 뚜껑을 잘 닫고 한 번 더 보자기로 덮는다. 준비가 완료되자 할머니는 소녀와 언니를 불렀다. 소녀와 언니는 그 시절 어느 농촌에서나 마찬가지로 심부름꾼이었다.      

부모님이 드실 점심과 물 주전자와 아빠가 한 잔 하실 막걸리까지 소녀와 언니가 나누어 들고 멀고 먼 산골 논까지 들고 가야 했다. 소녀는 어떤 게 덜 무거운지 머리를 썼다. 그때 언니는 잽싸게 주전자와 막걸리 통을 들고 나섰다. 결국 무거운 다라이는 소녀가 머리에 이고 가야 했다. 정수리 아프지 말라고 똬리(지푸라기 엮어 만든 푹신한 미니 쿠션 같은 거)를 머리에 놓고 빨간 다라이를 이고 집을 나섰다.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날은 더웠다. 언니는 저만치 앞서가고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조심조심 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는 길을 걸었다. 소녀와 세 살 차이 나는 작은언니는 잘 놀다가도 늘 티격태격 싸웠다. 

“언니. 중간에서 바꿔줘야 해. 나 너무 무거워”

“몰라. 너 힘 세잖아”

저런 얄미운 언니 같으니라고. 소녀는 걸음을 재촉했다. 거의 따라붙었을 때 바꾸자고 하려고 했다. 시골의 밭과 논으로 이어지는 길은 늘 억새풀처럼 긴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어떨 때는 풀들이 서로 얽혀 발을 헛디딜 때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땅콩밭 옆을 지날 때였다.

“여기까지 와. 바꿔줄게”

언니가 웬 일로 인심을 썼다. 소녀는 신나서 빨리 걸었다. 거기서부터는 언덕을 계속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그때

“어 어~~”

꽈당!

이를 어째! 그놈의 풀들이 발을 걸리게 만들어 그만 넘어져 머리에 이고 있던 부모님의 점심을 땅콩밭에 엎지르고 말았다. 

“아이코. 머야 어떡해”

언니가 놀라 달려왔다. 밥과 국과 반찬에 땅콩밭의 흙과 돌들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소녀와 언니는 서로 놀란 눈을 쳐다보며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집으로 다시 가면 할머니한테 엄청 혼날 거 같고, 이대로 부모님한테 가져다 드릴 수는 없고.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언니. 할머니보다 엄마 아빠가 혼내는 게 약하니까 그냥 엄마 아빠한테 가지고 가자. 돌은 좀 우리가 골라내서 가져가면 되잖아?”

이런 이런. 정말 못 말리는 수준이다.

“야. 돌밥을 드시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

언니는 그래도 좀 나았다. 그런데 결국 언니도 할머니보다는 엄마 아빠를 택했다. 자매는 논으로 향했다. 자매를 보자 부모님은 배고팠는데 잘 됐다며 자리를 잡았다. 과연 어떻게 나오실까. 자매는 조마조마했다. 한 입 국을 드시더니 엄마가 

“아이고 이게 머야. 웬 돌이 씹혀 퉤퉤.”

“밥에 흙이 들어가 있어. 이게 뭐야?”          

엄마는 얼른 뱉어버렸다.

단박에 들켜버렸다. 자매는 이실직고했다. 엄마는 화를 내며 다시 해오라고 말했다. 소녀와 언니는 한바탕 혼나고, 집으로 가서 할머니한테 한번 더 실컷 혼나고 다시 밥을 지어서 머리에 이고- 이번에는 언니가- 산골 논을 향해 갔다. 그날 부모님은 오후 4시가 다 되어 점심을 드셨다. 


소녀와 언니는 빈 그릇을 이고 내려오면서 티격태격 서로 ‘네 탓이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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