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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Dec 23. 2024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류이치 사카모토를 그리워하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아들이 자주피아노로 연주해 알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크지 않지만 들을수록 반복되는 멜로디에 점점 중독된다. 언뜻 활기찬 듯하면서 묘하게 슬프고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는 느낌의 음악이라고 할까.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주제가이다. 얼마 전 읽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젊은 날 이 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넣고 싶어 출연했다며 배우보다는 음악가의 입지를 보이려고 한 대로 그의 연기보다는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1983년작인데 얼마 전 11월에 재개봉해서 과연 이 음악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지 궁금해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 초반부터 음악이 흘러나와 반가웠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젊고 잘생긴 모습에 새삼 감회가 새롭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대위 ‘요 노이’로 나온다. 영국 출신의 음악가이자 배우이고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뮤지션 중 한 명으로 글램 록의 대부인 데이비드 보위가 ‘잭 샐리어스’로 나오고 (사실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 잘 몰랐다.)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배우이고 감독인 키타노 타케시가 ‘하라’ 중사로 나온다. 영화제목에 나오는 로렌스 중령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실제로는 위의 세 명이 주인공이다.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답답하고 안타깝고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엇갈리는 운명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 사람은 젊고 생기발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특히 데이비드 보위와 류이치 사카모토가 눈부시다.           



1942년 인도네시아 자와 섬 레바크 센싸타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영화의 무대이다. 육군 중령 잭 샐리어스가 포로로 잡혀오고 군사재판을 하는 곳에서 요 노이 대위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잭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사형판결이 내려지지만 요 노이는 살려준다. 포로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잭은 일본군의 눈밖에 날  행동을 하지만 그때마다 요 노이가 나타나 도와준다. 한편 로렌스가 오해를 받아 요 노이는 그를 죽이려고 한다. 로렌스는 단순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옳지 않다고 말한다. 더운 인도네시아지만 크리스마스 기간이다. 하라중사는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아 로렌스를 살려준다. 천황을 숭배하고 할복문화를 가진 군국주의 일본 병사이지만 크리스마스라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를 생색은 내지만 인정한다는 식으로 관용을 베풀어 살려준다. 가네모토 병사의 할복 장면이 나오는데 한 번에 죽지 않자 목까지 쳐야 하는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걸 본 포로가 스스로 죽어버리자 요 노이는 당황하며 조의를 표하려는데 거기에 따르지 않는 포로들과의 갈등이 연출되면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좁은 수용소에서 총을 든 자와 갇힌 자 사이에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요 노이가 포로 대장을 죽이려 하자 잭이 당당히 걸어 나와 그에게 얼굴 키스를 하면서 극은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요 노이의 잭에 대해 억압하고 있던 감정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쓰러지고 결국 잭은 모래에 묻혀 죽임을 당한다. 


전쟁은 끝이 나고 1946년 이제는 승자와 패자가 바뀌어 요노이대 위는 바로 처형되고, 하라가 잡혀있는 감옥에 로렌스가 찾아온다. 이때도 역시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하라는 전쟁 중에 자신은 다른 군인처럼 행동했을 뿐인데 내일 처형을 당하는 게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자신도 전쟁 중 승자였던 일본군의 입장에서 패자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거처럼 이제는 입장이 바뀐 채 역시  승자가 된 연합군이 패자인 일본군에게 이겼다고 하는 증명을 남기려고 당신을 처형하는 거다라고 말한다. 승자도 패자도 우리 모두 옳지 않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하라는 절망적인 표정을 짓다가 헤어질 때 활짝 웃으며 영국 문화식으로 인사를 던진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래서 이 곡의 제목으로 붙여진 게 아닐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우정만이 존재하지 않는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제목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할복을 통한 자결이 숭고한 거라고 믿는 일본병사들과 구차하더라도 살아남는 게 숭고하다고 믿는 로렌스. 여기서 또다시 ‘사피엔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믿는 상상의 질서를 위해 인간은 너무나 쉽게 타인과 자신을 죽인다. 믿음의 근저에는 인간존중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그저 사상을 위한 사상일 때가 많다.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교육받은 게 올바르다고 믿어버린다. 보이지 않는 신념과 사상이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철학이 중요하다. 인간의 생명을 우선으로 하는 사상이 너무나 절실하다. 누구를 위한 철학이고 행동인가에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야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일본군 대위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음악가로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전하는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돌아가셨지만 젊은 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영화는 음악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주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 말살로 피폐해져 가는 인간들에게 애잔한 위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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