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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즐리 Jun 07. 2022

강남역 따귀사건

살면서 가장 황당했던 일이 있다면 강남역에서 따귀를 맞았을 때다. 대학교 1학년 때 선배와 함께 강남역에서 술을 먹기로 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내게 허름한 대학로 술집 말고 직장인들이 다니는 멋들어진 술집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선배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오후 5시 정도에 강남역 9번 출구에서 만나 뒤편 먹자골목으로 걸어가면서 적당한 술집을 물색하고 있었다. 먹자골목 사거리 정도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전단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전단지를 건네받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다짜고짜 내 따귀를 세게 때리는 것이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고, 그 와중에 선배가 득달같이 그 사람의 멱살을 잡아채 주먹을 갈기는 시늉을 했다. 뺨 맞은 나는 정작 가만히 있는데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웃기는 상황이 펼쳐졌다. 자칫하면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서 나는 얼른 한 손으로 선배를 낚아채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남자에게 갈 길 가시라는 손 짓을 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정말 별다른 사과 한 마디 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선배가 내게 거듭 괜찮냐고 물었는데 나는 당연히 괜찮지가 않았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일까. 아무리 곱씹어봐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술집에 앉아서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로 시작해서 심지어 그 사람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는 바보 같은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내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살다 보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안좋은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강남역 따귀사건을 떠올리면 생각이 굉장히 심플해진다. 답이 없는 문제다, 그냥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만다. 그날 내 대신 그놈의 멱살을 잡아준 선배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게 영문 없이 따귀를 날리는 놈을 만나면 나도 귓방망이 한 대는 날려야지. 그래야 억울하지는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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