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꼭 일 년 만에 남동생 정민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정민이 잠이 든 채, 과로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동안 지각 한번 없던 정민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출근하지 않자 그의 동료가 정민의 집을 찾았다가 발견했다.
급히 119를 부르고 정민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정민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연락을 받은 정은은 정민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안치실을 찾았다.
잘 생기고 건장했던 내 동생 정민이 왜 이 차가운 곳에 누워 있는지, 정은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몸 곳곳에 번져 있는 시퍼런 시반을 보며, 정은은 그저 정민이 너무 추운 곳에 오래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은은 정민의 볼을 쓰다듬고, 손을 꼭 잡아 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정은은 그저 눈을 감고 평온한 얼굴로 누워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안치실 밖을 나서자, 마지막으로 정민을 한 번만 안아볼걸.. 정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자신의 따뜻한 손으로 정민의 두 볼을 쓸어 주었더라면 그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까.. 정은은 아쉬움이 남았다.
정은과 남편 성호는 정민의 집을 찾았다.
방금 전까지도 정민이 있었던 것처럼, 집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정민이 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정은은 정말로 그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이 자식은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짬뽕 배달시켜 먹었나 봐."
"짬뽕 먹으면서 컴퓨터 게임했네, 책상에 짬뽕 국물 다 흘려놓고!"
먹다 남긴 밥은 곰팡이가 피었고 짬뽕은 쉰내가 났다.
정은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치워 나갔다. 그러다 바닥에 펼쳐진 이불과 찢긴 옷가지를 발견한 순간, 정은은 그것들을 품에 안고 오열했다.
집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정민을 이불째 침대에서 내리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 그가 입고 있던 옷을 가위로 잘라낸 것이라 정은은 추측했다.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져 정은은 미칠 것만 같았다.
화장을 마친 정민을 정은은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추모공원에 안치시켰다.
정은은 아직 온기가 남아 따뜻한 정민의 유골함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정은은 품에 안고 있던 유골함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올려 두고 손으로 천천히 쓸며 말했다.
"정민아, 너 엄마가 보고 싶어서 간 거지?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서 그렇게 서둘러 간 거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정민은 누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응. 누나 말이 맞아.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어. 그러니 누나 이제 내 걱정하지 마. 우리, 잘 지내고 있을게. 누나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정은은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갈라 그 안으로 두 손을 쓱 밀어 넣고 마구 휘젓는 것만 같았다.
죽기 살기로 버텨오던 정은이 이제는 정말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정은의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정은은 정민의 채취와 손때가 묻어 있는 유품 몇 가지를 챙겨 상자에 담아 두었었다.
그 상자를 꺼내어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정민의 시계를 꺼내 들었다.
정은은 정민의 시계를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문질렀다. 그렇게 하면 정민의 손길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정은은 정민의 유품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지만, 어린 시절의 정민이 눈앞에 아른거려 정은은 차마 눈물을 닦아낼 수 없었다. 눈물을 닦아내면 그 아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어린 정민이 쪼그리고 앉아 모래 놀이를 하다가 누나 정은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정민이 이렇게 자신의 곁을 떠나버릴지도 모르고, 정은은 정민에게 무심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정은은 더는 버텨낼 힘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빠 정근, 엄마 미순, 동생 정민의 죽음이 한탄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이 측은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은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빠, 엄마, 정민이가 뭐가 불쌍해! 제일 불쌍한 사람은 나야!"
정은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생각했고 세상의 모든 기운이 자신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매번 악착같이 살아내는 자신에게 누군가 벌을 주는 것만 같았다.
부모에게 살가운 딸이 아니었고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은 죄책감이란 돌덩이가 되어 정은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정은은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짐을 남겨 둔 채 홀가분하게 떠나버린 그들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벌을 내리는,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도 분노가 치밀었다.
하나만으로도 벅찬 그 무거운 돌덩이를 세 개나 가슴에 매달고 살려니 정은은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동생 정민만큼은 데려가지 말았어야지....."
"사람이 살 수 있는 숨구멍 하나쯤은 줘야지.. 왜 이렇게 다 빼앗아가.."
정은은 더 이상 억척스럽게 살아내고 싶지 않아 졌다.